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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Aug 18. 2024

커리어를 잃은 아프간 여성의 고민

누루(نور)

https://v.daum.net/v/poOXIij4B3?x_trkm=t

위에 첨부된 기사를 보다가 17년 전 아프간 파병 시절이 떠올랐다. 17년 전 스스로 파병을 결정했을 때, 가장 큰 목적은 돈이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1달에 생명수당과 위험수당을 합해 약 2백만 원이 책정되었고, 6개월 넘는 기간 동안 천만 원을 넘게 벌 수 있었다. 파병의 다른 목적은 필요없었다. 천만원이면 충분했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폼나는 대의명분도 조금은 있었다. 당시 대외적인 한국군의 파병 목적은 '아프간 재건사업 동참'이었기 때문이었다. 23살의 어렸던 나는, 세속적인 목적('돈')을 숨긴 채 남들에게는 오롯이 '아프간 재건사업'을 위해 파병을 간다는 젠체를 했다.


젠체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약간의 사명감을 느꼈나 보다. 파병이 끝난 후에도 마음속으로는 아프간이, 아프간의 힘없는 일반 서민들이 잘 되기를 늘 바라게 되었다.

 

2021년 8월 미국이 아프간에서 완전 철수했고, 탈레반이 재집권하게 되었다. 탈레반의 악명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던지라, 더욱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아프간의 현실은 17년 전과 변한 게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아프간 여성 직장인을 주제로 한 짧은 소설을 지었다.



또 다른 카불의 새벽이 밝았다. 어두운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며 골목길에 빛이 드리웠다. 누루(نور)는 모스크에서 기도 소리를 알리는 아잔 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어나기 싫었다. 침대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몸을 일으키며 출근을 준비했다.


그녀는 유능한 변호사였다. 카불 대학교 법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사법고시도 동기 중에서 가장 빨리 패스했다. 그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미군이 점령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해 그녀판사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전통 이슬람을 공부한 남성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녀는 실망하지 않고, UN과 국제 인권 단체가 지원하는 법률 사무소에서 여성 인권 변호사로 사회생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미군이 완전 철수하고 탈레반이 재집권한 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탈레반 정부는 여성의 변호사 자격을 강제로 박탈했다. 그녀의 변호사 자격도 정지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저 법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같은 여성을 돕는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녀 매일 아침 부르카를 두르고 출근했다. 얼굴은 완전히 가려져 있었고, 부르카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이방인의 것이었다. 하지만 부르카 너머로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무실로 들어서면서도 그녀는 부르카를 벗을 수 없었다. 남성 동료들이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려는 듯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녀는 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여성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아무리 억압적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이 현실을 그냥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사무실에서 법률 서류를 정리하고,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방안을 늘 고심했다. 비록 변호사로서 법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녀는 물심양면으로 본인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문서와 편지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어느 날, 짙은 부르카를 입은 여성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 여성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부르카 너머의 얼굴이 상상되어 눈물이 났다. 얼굴에 성한 데가 없으리라... 그녀는 이 여성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뒤, 그녀는 여성 보호소와 연결해 여성을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자신도 안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익숙한 골목을 지나며, 그녀는 자신의 집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때, 그녀의 앞을 건장한 남자 3명이 막아섰다.


"더 이상 나서지 않는 게 좋겠어. 여자가 나서봤자 좋을 게 없어." 무리 중 한 명이 말했다. 아편에서 덜 깬 듯 눈동자는 흐릿했지만, 경고의 의미가 흐릿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를 위협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부르카 안에서 자신을 꼭 껴안고 있었다.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는 저의 일을 할 뿐입니다."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남자들은 비릿하게 웃으며 그녀 지나쳤다. 그녀는 떨리는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문을 닫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부르카를 벗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이 땅의 여성들의 자유를 향한 꿈은 아무리 억압되어도 꺾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이다. 자유를 향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누루(نور): 아랍어로 '빛'을 뜻함. 직역으로 '희망'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빛이 어둠 속에서 희망을 상징하는 것처럼, '누루'라는 이름도 종종 희망을 상징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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