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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Aug 23. 2024

일과 에세이

혹등고래와 이연실 작가님

나는 존경하고 흠모하는 대상이 많다.


전 세계에 걸쳐 있고, 성별, 피부색, 직업에 관계없이 존경하고 흠모한다. 그리고 심지어 사람이 아닌 대상*도 있어 딱 한 가지 빼고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그 한 가지 공통점은 내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사람들(혹은 동물들)은 나를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혹등고래를 사무치게 흠모한다. 그래서 혹등고래에 직접 가닿기 위해 죽어라 스킨 스쿠버를 익혔고, 프리 다이빙을 배웠다. 그분은 오직 바닷속에만 영접을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 전에. 지금의 늙고 병든 몸을 바다에 떨어뜨린다면, 혹등고래가 아니라 용왕님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대표님인 이연실 님도 그렇다. 그분은 나를 전혀 모르지만, 나는 그분을 너무 잘 안다.

그분이 문학동네에서 16년간 편집자로 시절을 보낼 때, 작업한 <라면을 끓이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걷는 사람, 하정우>, <김이나의 작사법>,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었다. 그리고 2년 전 출판사 이야기장수로 적을 옮겨 편집자이자 1인 대표로 활약하며 작업한 <형사 박미옥>, <가녀장의 시대>, <엄마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흡연 여성 잔혹사>도 읽었다.


나는 책을 고를 때 작가와 제목 그리고 목차를 주로 살피고, 간혹 외국책의 경우 번역자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편집자를 보고 책을 고르는 경우는 이연실 대표님을 빼고는 없다. 처음에는 편집자를 의식하지 않다가 읽었던 수많은 책이, 어떤 순간에 이연실 편집자님의 손길을 거쳐간 것을 알았을 때 책 너머의 그분이 상상되어 기분이 묘했다.


오른쪽 사진은 번역가 박은정 님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님, 그리고 이연실 편집자님. (출처: 한국일보)

최근에는 편집자가 아닌 작가로 직접 쓴 <에세이 만드는 법>도 읽었다. 이쯤 되면 이연실 성덕 수준이다.


책 <에세이 만드는 법>을 통해 본인이 문학동네 편집자 시절 겪었던 일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 그리고 그 극복 과정과 성취 등을 너무나 흥미롭게 직접 이야기장수가 되어 독자에게 알려주었다. 편집자 이연실이 아닌 작가 이연실로서.


책과 그 책의 작가는 관심도 있고 어느 정도 익숙했지만 직업인으로서의 편집자의 세계는 전혀 몰랐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내가 모르던 직업인의 삶을 엿본 기분이였다. 언제나 나와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일을 하는 이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롭고 새로운 자극제가 된다.  


책 내용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한다. 바로 일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것이다.



이제 나는 디자이너가 이번 작업은 유난히 힘들다고 말할 때, 진짜 이런 상황에서 또 수정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화낼 때, 그래도 '한 번 더' 한 걸음만 더 가 보자고 정성껏 설득하고 그의 생각을 묻는 것까지가 내 일임을 안다.


뭘 굳이 시간 들여 '노가다'를 하느냐고, 보도자료는 결국 내용이 중한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도 일간지 보도자료는 회사에서 가장 인쇄 품질이 좋은 레이저 프린터 앞에 붙어 앉아서 한 장 한 장 컬러 출력해 내 손으로 일일이 스테이플러를 박는다. 내가 설정해 둔 서체나 사진이 깨지지 않는지, 페이지가 뒤섞여 들어가거나 누락되진 않는지 낱장까지 다 확인한 총천연색 보도자료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팅해 보낸다. 이건 신입 시절부터 줄곧 내가 직접 쓴 보도자료에 대해 지키고 있는 '리추얼'이다.


<에세이 만드는 법> 중에서.




나의 많은 일들이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일인데, 그간 나의 설득 방식은 특색이 없었다. 아마 간절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연실 대표님처럼 정성껏 설득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린 적이 거의 없었다. 업業을 떠나 이연실 작가님을 통해 일을 대하는 태도를,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웠다.


이쯤 되면 이연실 대표님은 나에게는 혹등고래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혹등고래는 내가 모르는 바닷속의 무한한 자유로움을 알려주었고, 이연실 대표님은 내가 모르는 편집자의 세계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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