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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Aug 27. 2024

40대 직장인 타투남 점심시간에 체한 썰

동지를 기다리며

내 지인 중에 뒤늦게 타투계로 입문한 T가 있다. 나이는 두 번째 20대를 맞은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마치 첫 번째 20대인 양 꾸준히 타투를 새기고 있다.


나름의 엄격한 규칙이 있는데 동물들만 몸에 허락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허락한 동물은 고래, 늑대, 만타가오리, 늑대 등등이 있다. 해외 TV 프로그램으로 비유하면 '내셔널지오그래픽', 국내 TV 프로그램으로 비유하면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정도가 되지 않을까? 더 궁금하신 분은 아래글 참고.


https://brunch.co.kr/@humorist/37

T는 11월 7일을 기다리고 있다. 유난히 덥고 폭우도 심했던 올해를 잘 견딘 본인을 위해 그 날 추가 타투를 선물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홍대에서 유명한 타투샵 예약도 마쳤다고 한다. 왜 11월 7일 이냐고 물으니, 타투는 24절기 중 입동立冬(겨울의 시작)에 해야 제맛이라고 한다. 무슨 소리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어찌 그 속을 알리요.


그 T가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체할 뻔했던 얘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렇다. T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T는 어릴 때부터 타투에 대한 동경을 품었지만,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30대 후반에 첫 타투를 작업했다. T는 타투가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칠까 봐 언제나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부위에만 타투를 허락했다. 회사에서는 아무도 그가 타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T는 회사 임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에 초대되었다. 이 자리에는 보수적인 성향의 김 고문, 박 상무 그리고 김 전무가 함께했다. 세 사람은 평소에도 삼촌아닌 ’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점심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요즘 젊은이들의 뒷담화로 이어졌다. 그러다 김 고문이 갑자기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애들, 왜 그렇게 문신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유행이라지만, 몸을 그렇게 낙서처럼 망쳐 놓고 다니는 걸 보면 참 한심하지 않나요?”


 상무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맞아요. 문신이 뭐라고, 그걸 자랑이라고 여기고 보여주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혀요. 우리 때는 그런 거 하면 부모님께 혼나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김 전무는 혀를 차며 말했다. “게다가 문신이 많으면 취업도 힘들다고 하잖아. 그런 건 인생을 낭비하는 거야. 문신 있으면 절대 안 뽑지. 암.T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그는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손에 쥔 젓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세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T자신의 등과 가슴에 새겨진 타투가 새삼스럽게 무겁게 느껴졌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접시를 바라보며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다 김 고문물었다. “T팀장은 어떻게 생각해?(그렇다. T는 팀장이다) 요즘 젊은이들 문신하는 거 보면 말이야.” T는 잠시 멈칫했다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뭐, 각자 취향이겠죠. 시대가 변하면서 취향도 변하니까요. 저도 뭐... 그냥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다행히 삼꼰(세 명의 꼰대) 그의 대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채 국밥에 다시 코를 박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T작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그러나 그날의 점심은 T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다.



결국 T에게 문신은 홍길동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홍길동이 아무리 아버지를 사랑하고 부르고 싶어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듯이, T 역시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을 아무리 아끼고 사랑해도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문신들이 T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T는 매일 아침 셔츠를 입으면서 타투의 여러 동물들에게 속삭인다고 한다. "고래야 잘 숨어줘, 늑대야 저녁에 보자." 이런 식으로.


진작에 두 번째 20대를 맞은 내 지인 T를 보며, 첫 번째 20대를 맞은 친구들에 비해서도 열정이 딸리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T는 앞으로도 험난한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잘 이겨나갈 것이다. 동물 친구들과 함께.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찍으며,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의 질문들을 풀면서.


마지막으로 T한테 하는 질문. 그런데 아프진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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