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홍택 작가님의 책<90년생이 온다>를 아시는지? 2018년 11월에 출간된 책으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전 직원에게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로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했다고 해서 더 유명세를 떨친 책이다. 남들이 하는 것 중에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건 다 해야 하는 '귀얇이 나'는 당연히 책을 샀고, 읽었드랬다.
대략적인 내용은,
흔히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90년생의 특징과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책. 90년대생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소비 패턴, 직장 문화에 대한 태도 등을 심도 있게 다룸. 이를 통해 기성세대와의 차이점뿐만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트렌드와 사회적 변화도 탐구. 정도로 요약된다.
나는 왜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까?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유명했던 책을, 그리고 분명히 읽었던 책을 '나는 왜 책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할까?'
물론, 내가 읽은 책이라고 해서 몇 년 전의 모든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인상 깊었던 책은 어느 정도 내용을 기억하는 편임에도 <90년생이 온다>는 심할 정도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진정 내가 놀랬다. 걱정도 되고. (이게 노화인 것인가... 그래서 기억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90년생과 함께 노화도 같이 왔다... 그래, 술을 줄이자.)
다행히 전자책으로 샀던 책이라 내용을 다시 휘리릭 보는데, 그럴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6년 전 책을 읽던 나를 상상해 보면, 당시 나는 책 내용에 공감은 하면서도 크게 깨달은 바나 새로운 자극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체가 80년대 중반생으로 90년생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53년생인 당시 대통령이 당시 직장(청와대)에서 전 직원에게 선물을 줄 만큼의 깨달음이라든지 놀라움은 당시의 나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나도 나름 MZ의 끝자락이라는 자부심.
하지만... 또 반전이 있었으니...
82년생 임홍택 작가님은 5년이 흐른 23년 11월에<2000년생이 온다>라는 엄청난 책을 발간하셨다.
임홍택 작가님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분을 잘 안다. (이런 게 셀럽인가 보다) 기사를 통해 작가님이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고, 잘 나가던 CJ를 때려치우고 더 잘 나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프로필을 검색해 보니... 진짜 넘사벽이 되었다. 창업도 하시고, 교수도 하시고...
넘사벽 편집왕 임작가님의 넘사벽 프로필
부러움은 그만하고... 다시 책얘기로 돌아가면, 책 <2000년생이 온다>는 대단하다. 얼마나 대단하냐면 추천사와 프롤로그만으로도 인상 깊었고, 책 극초반 1부에서 회사와 2000년생이 얽힌 사연을 보는데 충격과 자극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책 초반에 소개된 두 가지 사연, [수도권 소재 IT스타트업에서 인사부문 팀장으로 일하는 92년생 김영현 씨 사연]과 ['맑은 눈의 광인' 김아영 씨 사연]을 간단히 옮긴다.
1. 수도권 소재 IT스타트업에서 인사부문 팀장으로 일하는 92년생 김영현 씨 사연
수도권 소재 IT스타트업에서 인사부문 팀장으로 일하는 92년생 김영현 씨는 처음 팀장을 맡게 되었을 때 ‘젊은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말을 전할 때도 자기 경험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 피하려고 노력해왔으며, 팀 운영에 있어서도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려 했다. 2022년 말, 2000년생 신입사원이 입사를 했을 때도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하기 전까지 말이다.
인사팀에 새롭게 배속된 2000년생 신입사원 A씨는 퇴근 후 항상 자기계발을 했다. 그러다 보니 팀에서 진행하는 회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A씨에게 눈치를 준 적은 없었다. 당연히 퇴근 후는 업무 외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은 꼰대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오히려 반대편에서 발생했다. 회식이 끝난 다음 날 아침, A씨는 조용히 자리로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식에 참여하지 못했으니 제 몫만큼 회의비를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원에 비례해서 팀에 회의비가 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일정상 참여하지 못했다고 해서 제 몫으로 배정된 금액까지 팀원들이 쓰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결혼식에서도 사정이 있어서 식사를 못 하고 가는 이에게 답례품을 줍니다. 축의금을 내면 식권이나 답례품을 받아 갈 권리가 있듯이, 저에게도 제 몫으로 배정된 금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2. <MZ오피스> '맑은 눈의 광인狂人' 김아영 씨 사연
어제의 신입은 오늘의 선임이 되고, 새로운 신입이 들어오면 새로운 갈등이 시작된다. 비록 2년 차이지만 선임이 된 주현영에게는 새롭게 들어온 1년 차 ‘맑은 눈의 광인’ 김아영이 눈엣가시다. 사무실에서 무선 이어폰을 착용하고 일하는 김아영에게 주현영이 주의를 주려고 하자, 김아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는 이어폰을 꽂아야 업무 능률이 오르는 편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아영도 곧 동일한 어려움에 처한다. 바로 <SNL 코리아 시즌 4>부터 새롭게 등장한 윤가이 때문이다. 이 새로운 신입은 헤드폰 형태의 에어팟 맥스를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 에어팟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서 여러 번 지적을 받은 김아영은 역설적으로 에어팟 맥스를 낀 후배의 행동을 지적한다. 하지만 윤가이는 김아영에게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단지 패션 능률 때문인데 안 되나요?”라고 되묻는다. 극 중에서 ‘너 같은 후배를 만나보라’는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사연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시대와 세대의 변화에 대한 충격보다도 그간 내가 변화에 너무 무신경했다는 반성 때문이다. 90년생은 이미 회사에서 대세이고, 2000년생이 회사에 올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시대와 세대 변화에 무신경할 수 있는가?
물론, 변명의 여지는 아주 먼지만큼 있긴 있다. 지난 몇 년간 Hoya(글쓴이 아들)도 태어났고, 온갖 세월의 풍파 속에서 살아남느라 시대의 변화를 돌보기는커녕, 나를 돌볼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내 주위 (90년생 후반 이후에 태어난) 젊은 친구들이 꼰대인 나를 많이 배려해줌으로 인해 내가 그들 세대의 변화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고마워. YB!)
하지만 나의 옹진한 상황을 핑계로, 때로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운좋음을 핑계로 시대와 세대의 변화에 눈감을 수는 없다. <2000년생이 온다>를 위한 김경일 교수님*의 추천사를 옮기고 이 번 글은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분도 나를 모르지만 나는 잘 안다. 존경한다.
우리는 늙어간다. 단 한 명에게도 예외가 없는 준엄한 법칙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더 젊은 세대와 공존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그들을 알아야 한다. 시대의 멘토인 최재천 교수*의 '알면 사랑한다'는 신조처럼 말이다. 굳이 이해할 필요 없다. 분석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알면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책은 다음 시대의 주인공들을 알게 해주는 가장 친절하면서도 유쾌한 안내서다. 임홍택 작가 덕분에 심리학자인 나 역시도 점점 더 많아지는 다음 세대를 알게 된다. 고맙기 그지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