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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Sep 15. 2024

흔한 대기업 사무직의 착각

중소기업 만만치 않거든? 2

<이 글은 대한민국의 많은 대기업 중 고작 3개의 계열사 사무직을 주로 경험한 저의 생각임으로, 매우 주관적이고 편협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대한민국의 기업 중 시가총액 기준으로 5위 안에 들어가는 회사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고위직 한 분을 안다. 그분은 작년에 그 대기업에서 전무 5년 차의 부문장으로 퇴직했고, 올해는 몇몇 회사의 고문과 프리랜서를 겸해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나이는 환갑을 갓 넘긴 60대 초반. (여기서는 SD라고 지칭)


작년에 나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자리에 SD님이 있었기 때문에 건너 건너 들리는 소문으로만 SD님의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 나쁘지 않은 평이었다. 그 또래 대비해서 적당히 스마트하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대기업'빨'이 사라지고 나도 몇 번 직접 대면하고 일을 협의했드랬다.


실망스러웠다.


말귀를 못 알아먹을뿐더러, 일에 대한 센스도 떨어지는 듯 보였다. 주위에서 들리는 말로는 그나마 대기업에서 15년 임원으로 일하면서 쌓은 인맥 덕분에 조금의 쓸모가 있다고 한다. 내 눈에는 전혀 실력이 없어 보였다. 만약 인맥도 실력이라고 한다면 그 실력은 유통기간이 짧아 보였다. 유통기간이 있는 실력을 실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중소기업에서 근무하지만 그전에는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보니 꽤 많은 대기업 출신의 임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있다. 80% 이상이 재취업에 실패했다. 물론, 임원도 직급마다 차이는 있다. 사장이나 전무급은 그동안 벌어 놓은 돈도 많고 자존심도 세다 보니 재취업에 적극적이지 않으나, 상무급은 한창인 나이가 많고 모아놓은 돈도 어중간해서 보통 재취업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재취업에 성공해서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은 드물다. 특히, 내가 속한 사무직은 기술직에 비해 더 심각한 것 같다.


나는 궁금했다. 대기업 임원은 연봉도 수억 씩 받고 차량과 각종 복지 혜택을 받는다. 시장 논리에 의해 이 정도면 굉장히 능력이 있다는 얘기고, 대기업에서 짤리더라도 밖에서는 통상적으로 얼마든지 자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대기업만 나오면 시장 논리를 거스르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예전에 내가 쓴 글 <연봉을 올려 받는 이직은 과연 성공인가?>에서 일부 가져왔다.

직장인 연봉을 구성하는 요소


직장인의 연봉 = ① 현재 직장 내 짬밥 혹은 현재 직장 내에서만 인정받는 능력('우물 안 개구리 능력') + ② 현재 직장 외에도 인정받는 객관적인 능력('우물 밖 개구리 능력')

질문, 위에 3가지 Case 중 이직 후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Case는? 당연히 Case 3인 '우물 밖 개구리 능력'이 뛰어난 경우다. 이런 Case는 이직 후 성공적으로 적응할 확률이 매우 높다. 안타까운 경우는 Case 2가 운 좋게 이직에'는' 성공한 경우다. 안타깝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직 후 적응할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우물 안 개구리의 능력은 우물 밖에서는 소용없다.


그렇다면, Case 2에 해당하는 이가 왜 이직을 시도할까? 안타깝게도 자기 객관화가 잘되지 않아서 그렇다. 이쯤 해서 불러보자.

테스형~~!!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훈아 형님의 열창

SD님도 15년간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면서, 착각의 늪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회사와 조직이 잘했는데 본인이 잘했다는 착각. 그러니 자신감에 찬 나머지 커리어를 이어가고자 다른 회사 고문도 하는 거 아닐까? 대기업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개인이 대기업은 아니다.


최근에 내 또래의 또 다른 지인인 Lee와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Lee와 나는, 나의 전 직장 S대기업에서 1년 정도 친분을 쌓았고 같이 일한 경험도 있어 스타일을 잘 안다. 현재 Lee는 아직까지 S대기업에 근무 중이다.

S대기업 Lee와의 대화

Lee가 다니는 S대기업 계열사가 요즘 특히 어렵다 보니 Lee도 이직을 고려 중에 있다고 한다. 제일 걸리는 게 연봉인데, Lee는 현재 지금 회사에서 1억 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Lee의 업무 성향과 능력도 어느 정도 알고, 현재 중소기업을 2년째 다니는 내가 봤을 땐, Lee는 대기업 밖에서는 연봉 1억 원을 유지하기는 매우 힘들다. (물론, Lee는 나보다 재테크도 잘했고,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다. 나는 단지 회사에서의 업무 능력, 특히 사무직의 일에 한정해서만 얘기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걸까? 왜 대기업 사무직은, 대기업 밖에서는 연봉을 유지하기 힘들까?


내 생각에는, 대기업의 '비싼 입장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괜찮은 학벌과 높은 스펙을 요구받는다. 이를 갖추려면 많은 투자 비용이 발생한다. 즉,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이 비싼 셈이다. 대기업의 비싼 입장권을 가까스로 얻으면 어느 정도 보상이 이루어진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과 복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은 주로 80~90년대 산업화 이후, 그들만의 높은 장벽(자본과 인프라)을 만들어 놓았다. 즉, 자본과 인프라가 충분하기 때문에 사람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개개인은 부품에 불과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람대신 시스템(충분한 자본과 이미 구축된 인프라)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사람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게 된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의 협력업체이기 때문에, 대기업 직원들과 회의를 할 기회가 많다. 대기업 회의 때마다 느끼는데, 어떤 현안이 있으면 대기업에서는 여러 명이 달라붙는다. 우리 회사 중소기업에서는 한 명이 하는 일을 말이다. 나와 친한 연구소 현재회사 연구소 팀장은 말한다. 일당백은 아니더라도 일인당 대기업 연구소 친구들 10명은 당해내는 거 같다고.


과거에는 '비싼 입장료'만 내면 노력을 덜해도 티가 나지 않고 묻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급변했다. 더이상 '비싼 입장권'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제는 묻혀 갈 수 없으며, 밖은 더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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