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야구를 씹어먹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활약한 이대호 선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팀 일원으로 금메달을 따며 야구 선수로서 우리나라 최고봉에 오른 선수. 조선의 4번 타자라는 전무후무한 최고의 수식어를 가진 선수. 그의 실력에 걸맞게 연봉도 수백 억 원을 받았던 선수.
조선의 4번 타자와 평범하디 평범한 조선의 직장인인 나는 공통점이 있다.바로 부산 출신인 점과 부상(질병)을 달고 야구(직장생활)를 했던 점.
먼저 부산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이대호 선수는 부산에서 국회의원이나 시장 선거에 나와도 당선될 정도로 부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명실상부 부산이 낳은 최고의 스타다.
나는 부산과 김해에서 유년 시절 20년을 보냈고, 이후 20년 동안경상도를 완전히 떠나 살고 있기에 딱히 부산에 대한 애정은 거의 없다. 하지만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은 남아있다. 올해도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32년 전 1992년이 마지막 우승이었지만 그래도 자이언츠를 속으로 응원한다. (오랫동안 LG 계열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급여를 받았고, 때때로 전향의 압박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자이언츠 팬이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
아마도 자이언츠 선수 때문이지 싶다. 전설의 고 최동원 선수(내가 너무 어릴 때라 직접 활약하던 모습은 기억나질 않는다), 안경 에이스 염종석 선수, 자갈치 김민호 선수, 일찍 귀천하신 고 임수혁 선수, 그리고 이대호 선수까지. 가만히 보니 나는 선수들의 스토리를 사랑했나보다.
작년에 은퇴한 이대호 선수를 금쪽 상담소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간 말 못 했던 사연을 담담히 풀어놓는데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새삼 느꼈다. 특히, 선수시절 부상을 참고 뛰었다고 고백할 때는 가슴이 찡했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경기에 출전한다고 한다)
누적 연봉 429억이면... 부상을 참고... 뛸 만... 읍
나도 고백할 게 있다. 이대호 선수처럼 부상(고질병)을 참고(굳이 숨기지는 않는다) 매일 출근한다.
부상명(병명)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만성 비염>이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또는 자극성 대장 증후군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창자의 운동이 증가하여 설사나 변비가 생기고 아랫배가 아픈 만성 질환이다. 줄여서 과대증*이라 한다. (출처: 나무위키)
*나무위키에진짜 줄여서 '과대증'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과대증을 앓고 있는 나는, 대장이 취약하다. 그런 내가 '냉라떼'를 마시는 날은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날이다. '죽고 싶지만 라떼는 마시고 싶어' 그 정도 느낌일까? 희한하게 스트레스 많이 받은 날은 냉라떼가 땡긴다. 왜일까?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게, 머리는 스트레스로 받는다. 또한 머리는 육체와 정신을 지배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머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나(머리)는 생각도 하고, 육체도 지배하는데 스트레스까지 받으라고? 스트레스는 저기 밑에 대장한테 줘버려. 냉라떼나 마셔!!'
그렇게 머리의 지배를 받은 진짜 '나'는 냉라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의 대장이 그 고통을 넘겨받는다. 그러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머릿속의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스트레스받은 날 냉라떼가 땡기는 이유는 이게 아닐까 싶다.
또 다른 고질병 '만성 비염'에 대해 알아보자.
비염은 코 속의 점막에 염증이 생겨서 재채기나 코막힘, 콧물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것을 말함. (출처: 나무위키)
40을 넘으니 툭하면 울고*, 툭하면 콧물이 흐른다. 툭하면 우는 이유는 불안정한 심리 때문이고, 콧물은 비염 때문이다.
*회사 후배 결혼식에 갔다가, 신혼부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눈물이 났다. 눈물이 꽤 크게 나서 회사 동료들이 눈치챘다. '쟤 좀 이상하다고.' 내 마음을 몰라 주는 회사 동료들 때문에 더 눈물이 났다.
서울의 봄이 오면 나는 비염이 심해지고, 미세먼지가 안 좋으면 나는 비염이 심해지고, 술을 많이 마시면 나는 비염이 심해지고, 상사의 갈굼이 있으면 나는 비염이 심해진다. 그냥 365일 중에 360일쯤 비염을 달고 산다. 하지만 병원을 잘 찾지는 않는다. 이유는 항생제 때문이다.
병원을 찾으면 항생제를 처방한다. 나는 항생제가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 우선은 항생제를 먹으면 술을 마실 수 없다. 항생제를 먹는 와중에 고객 혹은 회사 내의 고갱님과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셨던 적이 있었는데 내 기준으로 환각 상태를 경험했다.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며칠을 심하게 고생했드랬다. (어쩌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걸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과대증을 (장)바닥에 깔고 있는 내가, 항생제를 먹으면 장에서 나비가 춤을 춘다. 불꽃이 터진다. 급설(사)도 터진다. 불난 집에 부채질 수준이 아니라 불난 집에 부탄가스 던지는 꼴이 된다. 차마 나는 나에게 부탄가스를 던질 수 없어, 비염이 오더라도 가급적 참는다. 그래서인지 콧물을 달고 산다. 콧물을 달고 출근한다. 이대호 선수가 무릎 부상을 달고 경기에 뛰었던 것처럼.
항생제는 급설을 유발할 수 있다. 나만 그런게 아니다. 과학이다.
이대호 선수가 선수 때 받은 연봉이 총 429억 원이라고 한다. 나는 이대호 선수의 연봉 100분의 1도 안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련다.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며 시도 때도 없이 코를 훌쩍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보련다. 조선의 4번 타자는 전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겼다. 조선의 직장인인 나도, 내 주위 동료와 Hoya(아들)와 J(아내)에게 꿈과 희망을 안기기 위해 또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