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가위 연휴를 앞둔 금요일이다. 퇴근을 할 무렵 다들 약간의 설렘이 얼굴에 묻어났다. 한가위니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한가위니깐.
그런 나는 퇴근을 하고, 집에 바로 가지 못했다. 집안의 공적인 일로 낯선 곳에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약속은 절대 아니었다. 아내와 싸워서 일부러 밖에서 시간을 때운 것도 아니었다! 진짜 집안의 공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겨우겨우 일을 처리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낯선 곳의 식당을 찾아 거리를 두리번거렸다. 24시간 중국집을 찾아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간짜장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의 히어로를 봤기 때문이었다. 그 히어로는 바로 <혼짬쏘*를 하는 중년 여성>
*혼자 짬뽕에 소주를 즐기다.
빨간 핸드폰 케이스의 소유주분이 혼짬쏘를 즐기는 중년 여성분이시다.
그렇다면 나는 왜 혼짬쏘를 즐기는 중년 여성을 멋있어할까? 아마도 권여선 작가님 때문에 그럴 것이다. 권여선 작가님은 소문난 작가이자 소문난 애주가이다. <안녕 주정뱅이>라는 술꾼의 술꾼에 의한 술꾼을 위한 최초의 연작 소설집을 발간했고,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있어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라는 수사를 문학적으로 얘기하신 분. 그리고 라일락꽃이 필 때면 순댓국에 소주를 마셔야겠다고 본인의 책에서 당당히 밝히신 분.
그분의 책 <오늘 뭐 먹지?*>를 잠깐 살펴보자.
*작가님은 사실 <오늘 '안주' 뭐 먹지?>를 염두에 두셨다고 한다.
라일락꽃이 필 때면 나는 순댓국이 먹고 싶다. 우리 동네에도 순댓국을 아주 잘하는 집이 있다. 이 집도 역시 순대의 부재로 순댓국의 진가를 발휘하는 집인데, 나는 가끔 혼자 가서 순댓국을 시켜 먹곤 한다. 들깨가 듬뿍 든 순댓국에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추고 돼지 귀, 오소리감투, 애기보 등을 먼저 건져 먹는다. 시원하고 달달한 깍두기에 갓 무쳐낸 배추 겉절이가 입맛을 돋운다. 매운 땡초를 된장에 찍어 먹고 뽀얀 순댓국 국물을 훌훌 떠먹으면 뇌수가 타는 듯한 쾌감이 샘솟는다. 거기에 소주 한 병을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다만 내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혼자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 먹는 나이 든 여자를 향해 쏟아지는 다종 다기한 시선들이다. 내가 혼자 와인 바에서 샐러드에 와인을 마신다면 받지 않아도 좋을 그 시선들은 주로 순댓국집 단골인 늙은 남자들의 것이다. 때로는 호기심에서, 때로는 괘씸함에서 그들은 나를 흘끔거린다. 자기들은 해도 되지만 여자들이 하면 뭔가 수상쩍다는 그 불평등의 시선은 어쩌면 ‘여자들이 이 맛과 이 재미를 알면 큰일인데’ 하는 귀여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메롱이라도 한 기분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요절도 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반세기 가깝게 입맛을 키우고 넓혀온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니까.
<오늘 안주 뭐 먹지?>를 읽고나서 부터 순댓국에(짬뽕도 상관없다) 혼자서 소주를 마시는 여성분들을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혼술 혼밥이지만, 확대해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세상의 편견(특히, 다종 다기한 시선들을 쏟아내는 늙은 남자들)에 맞서는 히어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들갑
이런 호들갑적인 생각을 가진 내가, 오늘 임자를 만난 것이다. 나는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혼짬쏘를 하는 분을 선망의 눈으로 쳐다봤다.
느긋히 짬뽕의 면을 조금 먹고, 소주 한 잔.
홍합을 까서 한 점 먹고, 소주 한 잔.
양파와 오징어를 함께 먹고, 소주 한 잔.
숟가락으로 국물을 세 번 떠서 먹고, 소주 한 잔.
그렇게 짬뽕과 소주는 느릿하게 비워졌다.
그런데 매우 아뿔싸! 짬뽕은 다 비웠는데, 소주가 2잔 정도 바닥에 남았다. 하지만 당황한 이는 나뿐이었다. 히어로 그분은 당황하지 않고 오른손 집게와 엄지로 단무지를 집어 들었다. (젖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단무지를 먹는 모습도 멋있었다)
그리고 단무지 반쪽을 씹으면서 소주 한 잔.
나머지 단무지 반쪽을 씹으면서 소주 한 잔.
완쏘!*
*완벽한 쏘주 한 병
너는 넋을 잃고 소설(아마 권여선 작가님이 보셨으면 소설로 옮겼으리라. 최소한 에세이라도)에 나올법한 그 모습을 봤다. 내 간짜장이 불어 터지는 지도 잊은 채.
소주를 마시고 들어가면 진짜 아내와 싸움을 각오해야 했기에, 소주와 비슷한 사이다를 시켰다. 나는 원래 짜장면에는 콜라를 마신다. 음식의 궁합은 색의 조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 만난 히어로가 더 멋졌던 이유는, 육체 노동자의 카리스마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육체 노동자를 흠모한다.
나는 비록 사무실에 앉아서 (간혹 혹은 자주) 말도 안 되는 말을 만들기 위해 타자를 치고, 통화를 하지만 내가 흠모하는 세계는 사무실 밖이다. 굵은 땀을 흘리고 몸을 쓰는 노동자들이 진정 내가 흠모하는 세계이자 대상이다. 우리 아버지가 평생을 공장 노동자로 사셨던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노동자의 아버지를 닮지 못해 도저히 노동으로는 지속적인 밥벌이를 할 수 없는 슬픈 몸뚱이의 소유자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내 아내는, 집안일을 하는 어설픈 나를 보며,
'똥손. 절대 노동으로 밥벌이할 생각 하지 마. 얼마 못가 무조건 다칠거야. 그러니깐 지금 회사에 잘해'라는 애정 어리고 현실적인 조언을 막 쏟아낸다.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주야장천 노동자 아버지의 타령*을 들었기 때문에 내 몸은 노동에 적합하지 않게 성장한 건지도 모르겠다. 헤비메탈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잘 자라지 못하는 토마토처럼.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한 뒤, 고층 빌딩이 많은 어느 동네의 사무실에서 번듯하게 컴퓨터 앞에서 자식이 일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소망이 담긴 경상도 남부 지방 전통 타령.
이런 문학적 취향(권여선 작가님의 영향)과 노동적 신념(노동자 아버지의 영향)을 가진 내가, 추석을 목전에 둔 낯선 곳에서의 쓸쓸한 밤에 영웅을 만나 횡재했다. 때아닌 기상 이변으로 걱정이 많지만, 이번 한가위에는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