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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an 04. 2025

꼰대는 왜 쓰는가

버마 시절

제게 가장 충격적인 책은 조지 오웰의 <버마 시절>입니다. 영국 태생의 오웰이 식민지인 인도령 버마에서 제국주의 경찰로 1922년부터 1928년까지 근무하며 경험한 점을 소설로 풀어낸 책입니다. 오웰은 훗날 '버마에서 일해본 덕분에 제국주의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버마에서의 경험이 <버마 시절> 외에도, <동물농장>, <1984> 집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저는 작년, 마흔 살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에 소설을 2편 쓰긴 했지만 거의 매일같이 쓰기 시작한 게 작년입니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만큼 쌓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저의 버마 경험은 글쓰기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버마에 있을 때 산 속에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오웰의 작품도 버마에서 대부분 읽었습니다)


저는 2017년부터 2년간 버마(미얀마)에서 시멘트 공장 노동자로 근무했습니다. 시멘트 공장은 도심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석회석 광산이 있는 정글 같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버마 시절>의 주인공인 플로리도 100년 전 버마의 원목을 벌목해서 영국으로 수출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배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점은, 1922년에 오웰이 버마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제가 2017년에 버마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비슷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오웰은 제도(제국주의)에 대한 혐오, 계급으로 사람을 나누려는 인간의 속물근성에 대한 염증을 주로 느낀 것 같습니다. 저도 형태는 다르지만 100년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일을 겪었고, 느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벌이는 현시대 기업들의 활동들이 과거 제국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요.


100년의 시간을 두고 서로의 감정을 소설이라는 매개로 공유하였으니, 당연히 오웰에 대한 저의 애정은 각별합니다. 그가 쓴 에세이도 물론 찾아서 읽어 보았고요. 특히 예전에 읽었던 <나는 왜 쓰는가>가 요즘 다시 생각납니다.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1) 순전한 이기심(똑똑해 보이고 싶은, 허영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동(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구) 4) 정치적 목적(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입니다.


아무래도 오웰이 살았던 20세기 초반과 중반은 1차 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오웰이 직접 참전하였음), 제국주의, 냉전 등등 거대한 담론에 둘러싸여, 작가로서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100년 전만 하더라도 문맹률이 높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수의 지식인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웰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고 있자면 당시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그대로 전달됩니다.


현대는 어떨까요? SNS와 1인 미디어의 시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진정한 소통은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각자의 에코챔버 속에서 자신의 생각만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다른 의견은 차단해 버리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꼰대'라는 단어는 단순한 비난이 아닌, 세대 간 소통의 실패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마흔의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제가, 이른바 '꼰대'는 왜 쓰는 걸까요? 오웰의 동기 4가지 중에, 2가지 정도가 해당됩니다. 물론, 오웰의 무게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지만요.


우선, 순전한 이기심이 있습니다. 허영심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저는 글쓰기 자체가 현시대에 경쟁력이 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순전히 저의 발전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글을 쓰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이기심은 역설적으로 더 나은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관점도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정치적 목적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양극화, 세대 간의 갈등 등 우리 시대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많은 이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급변하는 세계에서의 생존법을 고민하고, 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들과 소통하려 노력합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자신이 꼰대임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쌓여 36개월 된 제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랍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늦깎이 글쓴이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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