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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n 28. 2024

몰디브의 추억과 미얀마의 눈물

노동의 가치는 왜 차별 받는가

<결혼 후  신혼여행 기념으로 인천공항 출국 시에 받은 도장과 신혼 여행지 몰디브 출입국 도장. 그리고 결혼 한 달도 안 돼 출장으로 떠난 미얀마의 출입국 기록>


최근에 중국 비자를 갱신할 일이 생겨 우연히 여권을 들춰 보게 되었다. 2026년 1월이면 여권의 10년 유휴기간도 끝나는지라 그간 8년이 넘는 나의 해외 방문 기록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중국, 미국, 멕시코, 독일, 미얀마, 일본, 미얀마, 태국, 몰디브, 네덜란드 등등. 2006년에 발급 받은 예전 여권에는 주로 이라크, 요르단, 두바이 등 중동의 흔적이 대부분이었는데, 지난 10년은 중동을 넘어 보다 다양한 국가를 방문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그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여권의 페이지를 한장한장 넘기며 기억을 되새기다, 유독 한 페이지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바로 결혼식 다음 날 신혼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일부러 인천공항 출국 심사에서 받은 도장과 몰디브 입출국 도장, 그리고 결혼 한 달도 안되어 출장으로 떠난 미얀마 입출국 도장이 한 곳에 모인 페이지였다.


신혼여행으로 몰디브를 다녀온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미얀마에 있는 시멘트 공장 노동자로 2년간 아내와 떨어져 근무했다. 따라서 나에게 몰디브와 미얀마는 더운 날씨 외에는, 모든 점이 이질적인 국가이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더위조차도 달랐던 것 같다. 몰디브의 더위는 쨍하면서 청명하게 더웠다면, 미얀마는... 그냥 덥고 습했다.


한국은 한 겨울인 1월에 싱가폴을 경유해서 도착한 몰디브는 쨍한 여름의 나라였다. 그곳에서 바다  리조트에서 꿈같은 1주일을 보냈더랬다. 신혼여행 전부터, 스킨스쿠버와 프리다이빙을 즐겼던 나는, 아내를 두고 가끔 몰디브의 바다를 혼자 누볐다. 거북이, 만타 가오리, 돌고래(멀리서 보았다. 그리고 그 특유의 소리인지 음파인지는 아직도 귀에 쨍하다) 그리고 수 많은 물고기 들을 보며 유유자적 했다. 아내는 남편인 내가 물놀이를 가면 혼자 마사지도 받고 산책도 하며 또 다른 여유의 시간을 즐겼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는 가끔 몰디브의 석양과 바다내음을 그리워하고 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고.


소중한 추억이 담긴 몰디브를 미얀마에서 소환한 일이 있었다. 나는 미얀마 시멘트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정확히는 구매 업무를 맡고 있었고 내가 속한 부서에는 미얀마의 어느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한 미얀마인이 있어 의사소통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모모떼인이었고, 나는 줄여서 모모라고 불렀다. 모모는 한국어 뿐만 아니라, 한국에 관심이 많아 종종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성심성의껏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설명 해주다보니,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었다.

어느 날 모모가 나에게 물었다.


"팀장님, 혹시 몰디브 가보셨나요?"


나는 투명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봤지! 신혼여행으로. 너무 좋았어!"


나는 대답을 마친 뒤, 모모의 표정을 보고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모모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팀장님, 사실 페이스북 통해서 몰디브 사진 봤는데, 너무 좋아보였어요. 너무 가고 싶기도 하고해서, 얼마나 돈이 필요한지 알아보니 갈 수 없는 곳 이더군요..."


나는 모모가 갈 수 없다고 한 말의 뜻을 금새 알아차렸다. 그 당시 모모의 월급은 한 달에 약 30만 원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미얀마에서는 평균 이상의 월급 수준이었다. 한 달에 30만 원을 받는다고 하면, 몰디브에 가기 위해서는 2년은 필요했다. 그것도 월급을 쓰지 않고, 꼬박 저금을 해야만 하는 조건으로.


그러다보니 사실상 모모가 처한 상황에서 당장은 몰디브의 꿈은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미래에도 몰디브를 가지 못함을 모모도 알았던 것 같다.


내가 미얀마에서 노동자로 미얀마 사람들과 일하고 부대끼며 든 상념 중 가장 무거웠던 주제는 '왜, 나라의 차이가 국력의 차이가 개인 노동의 댓가도 결정하느냐?'이다. 가령, 비슷한 노동 강도의 편의점 일을 8시간 정도 미얀마에서 한다면 한 달에 약 10만 원 정도 벌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0만 정도 벌 것이며, 미국에서는 30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과 미국에서는 고스란히 월급을 모은다는 전제로 한국과 미국에서는 1달 정도 일하면 아이폰을 살 수 있는 구매 파워가 생기지만 미얀마에선는 1년 가까이 일해야지만 겨우 아이폰 한 대를 살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단순 계산하자면 숙련도를 떠나 한국이나 미국 대비해서, 미얀마는 10배는 물론이고, 그 이상을 일해야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같은 구매 파워를 얻게 되는 구조이다. 만약 숙련을 요하는 일이라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생각해보시라, 모모는 미얀마인이지만 한국어에 능통했고 월 급여가 30만원 수준의 노동자이다. 한국어에 능통한 미국인 노동자의 급여 수준은 단순히 모모의 10배 정도인 월 300만원 정도 일까?


나라의 국력이 개인의 노동력 가치를 기본적으로 정하는 구조를 깨닫았을 때, 부조리에 대한 허탈감은 더했다. 특히, SNS를 통해 미얀마에서도 비싸고 좋은 것들은 금새 찾을 수있다. 모모가 몰디브를 가고 싶어했던 것 처럼.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비의 수준은 한계가 있음을 깨달을 때, 그 충격은 누가 해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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