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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이 그동안 우리에게 숨겨온 비밀

회식 3부작의 그 마지막

by 바그다드Cafe

한국의 회식 문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진지하게 계산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 왔던 회식의 숨겨진 비밀(비용)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선 가장 명백한 비용부터 살펴보자면, 법인카드로 결제되는 회식비가 있습니다.


"아, 이건 회사가 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우리의 연말 성과급이 살짝 줄어드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요? 게다가 2차에서 부장님이 "오늘은 내가 쏜다!"라고 호기롭게 외치신 금액이 다음 달 회식에서 과장님의 카드로 돌아오는 신비한 순환의 법칙도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회식. 꼬꼬회입니다.) 심지어 어떤 회사는 건강검진비 지원 예산과 회식비 예산이 같은 계정이라는 슬픈 소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비용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의 생산성 손실입니다. 아침 9시, 회사에는 출근했지만 영혼은 아직 어제 회식장에 남아있는 직원들. 커피 일곱 잔을 마시고 나서야 겨우 모니터가 한 개로 보이기 시작하고, 엑셀 파일을 열었다 닫았다만 수십 번 반복하는 모습은 이제 한국 직장인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건강 관련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한창 술을 마시고 다닐 때 숙취해소 음료 구매 비용만 해도 연간 50만 원에 육박했습니다. 이 돈으로 주식투자라도 했더라면 지금쯤 중고차 한 대는 장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위장약 구매 비용은 또 어떻고요? 저의 위장은 매일 밤 울면서 저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고 있습니다. 숙취해소 전문 병원 원장님께서 단골손님으로 기억하시는 것은 자랑스러운 훈장입니다.


교통비 증가도 심각합니다. 평균 택시비가 2만 원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기사님과 나누는 인생상담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을 분실한 후 되찾기 위해 타는 추가 택시비, 실수로 반대 방향으로 가서 다시 돌아오는 택시비까지 더하면...


가정에서의 신뢰도 하락은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딱 한잔만 마시고 올게요"라는 발언 후 배우자의 신뢰도는 37%나 하락한다고 합니다. (제 아내 의견입니다) 아침부터 숙취 때문에 뒹구는 모습을 본 아이들의 존경심도 25% 감소한다고 합니다. (37개월 아이 의견입니다) 심지어 반려동물과의 유대감도 술 냄새나는 주인을 외면하는 고양이처럼 반토막이 난다고 합니다. (옆 집 고양이 의견입니다)


회식 때 한 실수로 인한 사회적 관계 손상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너무 취해서 기억이 안 나요"로 모면할 수 있는 실수의 횟수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죠. 카톡방에 실수로 보낸 메시지들, 그리고 다음 날 시도하는 카톡방 탈퇴...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사회의 숨겨진 비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의 계산법에 따르면 전국 직장인의 숙취로 인한 업무 손실 시간이 무려 연간 30억 시간입니다. (2천만 명의 직장인이 연간 50일, 한 번에 3시간 정도 숙취로 고생한다고 가정) 그 시간에 차라리 넷플릭스를 봤다면 올릴 수 있었을 국민 문화 수준은 또 어떻고요? 급하게 먹는 숙취해소 라면으로 인한 국민 건강 악화 비용까지 고려하면, 이는 분명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점심 회식의 활성화는 저녁에 밥도 못 먹는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되고 있고, 자율적 참석 문화도 점차 정착되어가고 있죠. 심지어 메타버스 회식이라는 신박한 아이디어도 등장했습니다. 아바타가 취하면 그냥 로그아웃하면 됩니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직장인 여러분의 회식이 즐겁고 건전한 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우리 모두가 맑은 정신으로 출근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p.s 저는 술을 마시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지금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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