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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그 처절한 역사

회식 3부작 중 그 두 번째

by 바그다드Cafe

술이 넘쳐나는 강산


어느 금요일, 상무님의 한 마디가 사무실을 술렁이게 했습니다.


"오늘 회식하자고. 빠지는 사람 없지?"


이 한 마디에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누군가는 아이 픽업을 핑계로, 또 누군가는 치과 예약을 핑계로 빠져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참석하게 되겠죠. 이것이 2025년에도 여전한 한국의 회식 문화입니다.


천년의 술자리


우리나라에서 '함께 모여 술을 마시는 문화'의 역사는 깊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연회도를 보면, 이미 그때부터 우리 민족은 술자리를 통해 공동체의 유대를 다졌나 봅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신 "풍요 삼천리 술이 강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조선시대의 향약계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지방의 자치규약이자 상부상조를 위한 공동체 조직이었는데, 이 모임에서도 술자리는 빠질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원샷! 원샷!"을 외치지는 않았겠죠. "이 술은 양반다운 품격으로 천천히 마셔야 하네..."라며 음주 속도를 조절했을 것 같습니다.


현대 회식 문화의 탄생


1970-80년대 고도성장기는 현대적 의미의 회식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입니다. '회사=가족'이라는 개념이 강했던 이 시기에는 회식이 마치 '직장 내 대가족 모임'과 같았습니다.


- 부장님은 아버님

- 과장님은 큰 형님

- 회식은 '효도'의 자리

대가족같은 회사입니다


80-90년대에는 '술 잘 마시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김 대리 일 잘하나?"


"일은 잘 못하지만... 술은 아주 잘 마십니다!"


"오호! 그거면 됐어! 승진감이야! 크게 될 걸세!"


변화의 바람


1997년 IMF 외환위기는 회식 문화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과도한 회식 문화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합리적인 회식 문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워라밸'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등장했습니다. 2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화가 이제는 가능해졌습니다.


"부장님, 오늘 저는 아이 학원 픽업이 있어서..."


"아,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MZ세대와 NEW 회식 문화


현재는 MZ세대의 등장으로 회식 문화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트렌드:

- 강압적 술자리 감소

- 와인 모임 증가

- 맥주 한잔 문화

- 점심 회식

- 취미 모임형 회식 (예: 클라이밍, 방탈출)


하지만 여전히 세대 간 인식 차이는 존재합니다.


"부장님, 이번엔 방탈출 카페 가보는 건 어떠세요?"


"방탈출...? 그게 뭐야, 술집 이름인가?"


변화와 불변


회식 문화는 분명 변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불변의 진리는 여전합니다.

- 다음 날 아침 출근이 최대의 적

- "오늘 너무 과했나..."라는 후회

- "다음부턴 적당히 마셔야지"라는 다짐

.

.

.

- 그리고 또다시 찾아오는 회식


새로운 회식 문화를 향해


회식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처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는 진정한 소통과 화합을 위한 새로운 회식 문화를 만들어갈 때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강요 없는 자발적 참여

- 다양한 형태의 모임 인정

- 세대 간 이해와 존중

-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날을 생각하는 마음?


부디 "처절한 회식 문화"가 아닌, "즐거운 회식 문화"가 안착하길 바라며, 오늘도 어딘가에서 건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속마음: 아... 내일 아침 어떻게 출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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