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

진짜 일을 위해 써야 할 에너지는 어디로 가노

by 바그다드Cafe

오늘도 우리의 소중한 업무 에너지는 블랙홀처럼 미스터리한 곳으로 사라져 갑니다. 마치 월급날 통장 잔고가 순식간에 증발하듯이 말이죠. 직장인의 사라진 에너지의 행방에 대해 추적해 보았습니다.

에너지 도둑 #1: 끝나지 않는 회의의 늪

"이 안건은 다음 회의에서 더 논의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러니까 오늘 회의는 다음 회의를 잡기 위한 회의였단 말씀이시죠?

회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제 머리카락은 빠지는 기분입니다. 이러다 탈모약을 먹든 머리를 밀고 다니든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너지 도둑 #2: 사내정치의 화려한 친목 도모

"차장님, 이번 주말에 등산 가신다면서요?"

"아, 네. 등산... 그러고 보니 저도 등산을 좋아하는데 마침 이번 주말이..."

업무 능력보다 중요한 건 상사의 취미 파악과 동호회 가입이라는 걸 익히 깨달은 지 오래입니다. 골프를 치지 못해 승진에서 밀린다는 건 이제 도시 전설이 아닌 것 같아요. 최근 회식에서 저는 혼이 났습니다. 골프를 안 배운다는 이유에서요... 다음번 승진에서 밀리겠네요...

에너지 도둑 #3: 완벽한 보고서를 위한 폰트 십장생

"이 보고서 폰트가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리고 여백도 좀 조정하고..."

상무님, 혹시 우리가 디자인 회사였나요?

보고서의 본질적인 내용보다 겉포장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날들이 계속됩니다.

마소*는 왜 이렇게 많은 폰트를 만들어놓은 걸까요? 빌게이츠는 보고서 때문에 수명이 줄어드는 K-직장인의 고충을 알까요? 폰트 지적을 받은 날에는 미국의 거대 빅테크 기업이 후발 주자 한국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음모가 아닐지 다소 합리적인 의심을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에너지 도둑 #4: 메신저 지옥

깨-똑! 깨----똑! 깨----------똑!

"확인했나?"

"넵. 방금 보내신 메일 확인했습니다."

"확인했다면 '확인했다'는 답장을 해."

"네, 지금 '확인했습니다'라고 답장드렸습니다."

"답장 확인했습니다."

에너지 도둑 #5: 칼퇴 방해 요정들

"아, 참! 잠깐만!"

퇴근 5분 전에 던져지는 이 마법의 주문 한 마디에, 오늘도 남아있는 에너지가 바닥을 찍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매일 생각합니다.

'잠깐'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정의하는 국제표준회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결론: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거짓말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회사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에너지는 보존되지 않고, 증발하고, 사라지고, 소멸합니다.

이쯤에서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진짜 일을 위한 에너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아마도 위의 에너지 도둑들이 모두 '진짜 일'의 일부였던 걸까요? 아니면 우리는 그저 에너지 소비 자체에 너무 익숙해진 걸까요?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에너지 소비도 그럴까요? 무의미해 보이는 회의, 보고서, 메신저 지옥 속에서도 우리는 나름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자, 이제 저는 이만 퇴근하려 합니다.

'아뿔싸, 상무님이 저녁 약속 없는지 물어보네요.'


p.s. 원치않는 회식은 에너지 대도입니다.

출처: word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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