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학 전공보다 중요한 '입맛'

베트남에서 땅을 치고 전공을 후회하다

by 바그다드Cafe

얼마 전 베트남을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운이 좋아 나름 여러 나라를 여행하거나, 일 때문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그중엔 한국인에게는 조금 낯선 나라들도 있었는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이나, 미얀마의 숲 속 시멘트 공장에서 일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한국에서 워낙 친숙한 이미지로 통하던 베트남은 이상하게도 그동안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경기도 다낭시', '경기도 낫짱시 스타필드'라는 별칭까지 붙는 이 나라는,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이 휴가지를 고를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후보입니다.


그러던 중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고, 며칠간 머무는 동안 저는 전공(아랍어)을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먹으면서 후회했습니다.


이전까지 저는 제 전공에 대해 후회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랍어 덕분에 일반적인 커리어 트랙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일들을 할 수 있었고, 중동이라는 이국적인 현장에서 지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인생의 큰 자산이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서울 외곽의 한 사무실에서 무난한 보고서를 쓰며 우물 안의 (살찐) 개구리처럼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베트남에 와서 처음으로 전공을 진지하게 후회하게 된 이유는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반미' 때문입니다.


저는 음식을 잘 가립니다.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저는 웬만하면 다 잘 먹습니다. 맛없는 음식이라는 건 제 사전에 없고, 있다면 '맛있는 음식', '더 맛있는 음식', '정말 맛있는 음식', 그리고 '진짜 맛있는 음식'뿐입니다.


중동에서 오래 일할 땐 양고기를 정말 좋아했고,

중동 특유의 샐러드와 타히니, 바바가누쉬, 훔무스를 애정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음식에 빠져 중국어를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 비즈니스 기회를 대비한 실용적인 이유도 17%쯤은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베트남 음식은 한입 먹는 순간 40살 인생을 반추하게 만드는 맛이었습니다. 쌀국수는 기본이고, 신선한 해산물, 향신료, 그리고 무엇보다… 반미. 그 바게트 안에 베트남의 역사와 풍미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챗GPT

잠시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반미(Bánh mì)'는 단순한 베트남식 샌드위치가 아닙니다. 프랑스 식민 지배 시절, 바게트가 베트남에 들어왔고 이후 현지 식재료와 결합해 독창적인 음식으로 진화했습니다. 프랑스의 밀가루 기반 식문화와 베트남의 향신료, 절임 채소, 고수, 간장, 돼지고기 조합이 하나의 빵 안에 깔끔하게 어우러졌습니다. 그 결과,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오직 베트남만의 맛'이 탄생한 것입니다.


반미는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과 시대의 타협이자 창조였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타협은 제 입속에서도 유효했습니다. 하루에 다섯 개씩 반미를 먹다가 결국 입천장이 다 까졌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마저 즐거웠습니다. 입 안이 헐었는데도 다음 날 또다시 반미를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대학에서 아랍어 대신 베트남어를 전공했다면 어땠을까?'


제가 다닌 학교에는 베트남어과도 있었습니다. 아랍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와 함께 동양어대 소속이었죠. 그때는 지금처럼 베트남이 완전 대세는 아니었고, 왠지 '아랍어를 전공하면 오일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상상으로 별생각 없이 아랍어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오일머니는커녕 석유 파동만 수없이 지나 보낸 저는 현재 2차 전지 관련 중소기업에서 영업·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 등 무려 열 가지 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공인 아랍어와는 전혀 관계없고요.


반미를 씹으며 저는 자문했습니다. "만약 20년 전, 베트남어를 선택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정답은 의외로 명쾌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2차 전지 관련 중소기업에서 영업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지원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장을 맡고 있었을 겁니다. 즉,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전공에 끌려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그때그때 살고 싶은 방향으로 길을 돌리고 또 돌리며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요. 지금 중국어를 배우는 것도,

그다음 방향을 위한 새로운 전환일 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전공은 핑계였습니다. 20년 전의 선택 하나가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돌아보면 지금의 저는 전공보다 훨씬 많은 선택들의 결과물입니다. 이직을 고민하던 어느 밤, 뜻밖의 제안을 덥석 문 순간, 심지어 어떤 도시로 여행을 떠날지 고르던 작은 결정까지도 모두 지금의 저를 조금씩 만든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거창한 이정표에서 찾지만, 실은 매일매일 크고 작은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지금의 방향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아랍어가, 베트남어가, 혹은 중국어가 내 인생을 결정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인생을 만든 건, '어떤 언어를 전공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느냐'였다는 걸 저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다음 반미를 고르듯, 또 하나의 작은 선택을 하며 저는 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바게트에 베트남의 채소와 고기, 동남아의 향신료가 낯설지만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 맛.


유럽도, 아시아도 아닌—오직 베트남만의 맛.


그 독창성은 단 하나의 문화가 만든 게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시대, 충돌과 타협, 실패와 적응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한 가지 언어나 한 번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어릴 적의 실패, 예상치 못한 만남, 우연한 기회, 그리고 수많은 갈림길에서의 주저함과 결단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나만의 맛'을 만들어냅니다.


그 맛이 조금 짜더라도, 매워도, 가끔은 너무 질겨도, 그건 온전히 '나'라는 존재의 풍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전공이 어떻든, 지금까지의 선택들이 반미처럼 어우러져 나만의 맛을 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하루에 5개의 반미를 씹으며, 입천장이 홀라당 까지며, 많은 생각을 곱씹었습니다.


이 집 반미가 정말 특히 맛있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