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절도도 절도죄에 해당됩니다.
오후 4시, 고객과 미팅이 잡혔습니다.
저는 늘 그렇듯 20분 먼저 도착해 머릿속 리허설을 돌렸습니다. 어떤 순서로 미팅을 이어가며, 어떤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까-그 짧은 20분이 저만의 준비 의식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4시 5분, 4시 10분… ‘갑님’은 보이지 않았고 휴대폰 알림도 조용했습니다.
조심스레 문자 한 통을 보냈습니다.
“혹시 오시는 길 괜찮으신가요?”
10분쯤 뒤에야 답이 왔습니다.
“가고 있습니다. 10분 후 도착합니다.”
결국 30분 지각. 심지어 “죄송합니다” 대신 “시작해 볼까요?”로 포문을 열더군요.
한국 조직문화의 오래된 클리셰가 있습니다. 갑은 늦어도 되고, 을은 미리 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 이건 상대의 존재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시간은 곧 위계이고, 위계는 곧 존엄이니까요.
얼마 전 <유퀴즈>에 출연한 배우 하지원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를 보든 인사를 잘하고 시간 약속을 잘 지키면, 늘 사랑받을 수 있다.”
그녀는 늘 30분 일찍 현장에 도착한답니다. 이유를 묻자, 그녀의 대답이 묵직했습니다.
“내가 늦으면 상대방의 시간을 뺏는 거잖아요.”
수많은 수식어를 가진 스타지만, 가장 반짝였던 건 ‘기본’을 지키는 태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지킨다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시간을 지킨다는 건 존중, 신뢰,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존중: 상대의 오늘 하루를, 계획을, 삶의 흐름을 존중한다는 신호
신뢰: “이 사람과는 약속을 맺어도 불안하지 않겠다”는 확신
여유: 일찍 도착해 시간을 확보하면, 궁극적으로는 미세한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유 또한 확보
대단한 계약서 한 장보다, 정시 도착이 더 많은 정보를 말해주는 순간도 있다는 걸 하지원 씨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1. 늦을 것 같으면 즉시 연락하기
2. 가능하면 10분 일찍 도착하기 (하지원 씨 레벨로 30분까지는 못 돼도)
3. 지각했다면 이유보다 사과 먼저
결국 일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고, 사람 사이에서 가장 오래가는 신뢰는 ‘기본’에서 옵니다.
그러니 제발—
늦더라도 미리 알려 주세요. 그리고 되도록이면 남의 시간을 뺏지 말아 주세요. 시간 절도도 절도죄에 해당됩니다. (물론, 형사상의 불이익은 없지만요)
그게 진짜 멋진 ‘갑’의 자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