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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망치는 충성심

우리 사람 혹은 회사 사람

by 바그다드Cafe

얼마 전, 회사원 지인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회사에 충성한다는 사람은 회사에 결국 마이너스가 될 확률이 높아.”


처음엔 웃고 넘겼습니다. “그래도 충성심 있는 직원이 낫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그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퇴근 후 양치질하면서도 생각났고, 자기 전에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도 충성이라는 단어에 꽤 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직에 오래 남겠다는 의지, 내가 이 회사를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책임감, 밤 10시 퇴근도 마다하지 않는 근성.


그런데요, 그게 정말 회사에 좋은 걸까요?


회사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친구는 이제 완전히 우리 사람이야.” 듣는 순간 기분이 좋습니다. 어깨에 힘도 들어갑니다. 심지어 회식 자리에서 소주 한 잔 따라주며 “우리 사람이지~”라고 말하면, 괜히 짠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우리끼리만 통하는 언어’가 되었단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어.”


“굳이 새롭게 할 필요 있나?”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회의실 안에서 신입의 의견은 조용히 묻히고, 개선의 목소리는 회의록에조차 남지 않습니다.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구조를 유지하다 보면, 회사는 밖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묵직하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망가집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오히려 ‘일단 해보자’는 태도와 ‘이거 왜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회사의 경쟁력입니다. 하지만 충성심이 깊은 고인 물일수록 이 두 가지를 가장 꺼려합니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어.”


“예전에 다 해봤던 거야.”


“괜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조용히 하자.”


그 말이 몇 년 쌓이면, 회사 분위기는 은은하게 노화됩니다. 피부로는 안 느껴지지만, 회사는 관성이라는 이름의 체중을 서서히 불립니다.


결국 새로운 시도는 번번이 꺾이고, 젊은 구성원은 입을 다물며, ‘우리는 가족입니다’라는 말만 남습니다. 그 가족이 언제부턴가 기능은 없고 정만 남아버립니다.


사실 충성이라는 말은 편리하고 또한 안정적입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윗선이 정하면 따르고, 조직이 결정하면 믿습니다. 게다가 ‘내가 회사를 위하는 사람’이라는 도덕적 면허까지 생깁니다.


그런데 그렇게 쌓인 충성심은 어느 순간 ‘이의 제기 금지’라는 입장으로 굳어집니다. 회의실에서 “이건 좀 이상한데요?”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냥 하던 대로 하자”는 말이 늘어납니다. 회사를 진정 걱정하는 사람보다, 회사를 충직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따라가는 사람이 더 오래 남는 구조가 됩니다.


진짜 회사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필요할 때는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아무 말은 못 하고, 집에 가서 배우자한테만 쏟아내는 건 충성이 아닙니다. 그건 스트레스 해소일뿐입니다.


좋은 조직은 오래 일하는 사람보다, 계속해서 질문하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자리를 오래 지킨다고 해서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 건 아닙니다. “그 친구는 예전부터 있었잖아”라는 말이 권위가 되는 순간, 조직은 굳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을 멈춘 충성은 ‘보이지 않는 관성’이 되어 회사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굳게 만듭니다. 새로운 인재가 들어와도 변화하지 못하고, 외부 환경이 바뀌어도 안에서는 그대로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은 “이건 왜 이대로 가고 있지?” 혹은 “정말 이 방식이 지금도 맞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입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었습니다. 묵묵히 맡은 일 해내고, 조직 입장 먼저 생각하고, 위에서 내린 방향에 맞춰 계획을 짜고 실무를 끌었습니다. 그런 저를 스스로 ‘충성심 있는 직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저는 지금 중소기업에서 영업전략구매투자해외사업인사총무물류대외협력팀장 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자꾸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충성하고 있는 대상은 정말 회사인가, 아니면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식일 뿐인가?”


진짜 충성이란, 가끔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용기고, 내 생각을 잠시 불편하게 꺼내는 태도라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즉, 회사를 위한다는 건, 입을 다무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한 순간에 입을 여는 일입니다. 질문을 던지고, 불편함을 말하고, 회사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이상함’을 그대로 두지 않는 태도입니다.


바꿔 말하면 충성은 ‘예스’라고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조직은 늙지 않습니다. 고여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조직은, 오래갑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회사는 결국 냉정한 곳이야.” 그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 냉정함을 이기는 건 맹목적인 충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는 ‘따뜻한 이성’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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