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래불사하
직장인에게도 여름은 옵니다.
작년에 이맘때쯤 중국 냉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중국 냉면을 기다리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올해 조금 더 간절해졌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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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날씨입니다. 올해는 유독 더운 여름이라고 합니다. 아니, 역사상 가장 무더운 여름이라고도 합니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장마도 예년보다 짧아졌고, 해가 뜨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뜨겁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가 올여름에 가장 시원함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중국 냉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입니다.
사실 직장인의 점심은 꽤 단조롭습니다. 메뉴판은 매일 비슷하고, 회사 근처를 돌고 돌아도 선택지는 결국 똑같습니다. 이런 직장인의 반복되는 점심 풍경에서 중국 냉면이 특별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여름에만 맛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여름 한정 메뉴는 일종의 계절의식과도 같습니다. 마치 이걸 먹어야 비로소 여름을 살아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반대입니다. 여름이 오기도 전에, 이미 한여름입니다. 달력은 아직 초여름을 가리키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계절은 이미 7월 말의 폭염입니다. 달력보다 날씨가 먼저 움직이는 시대, 우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도 벅찬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계절을 느끼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더위에 짜증만 내기보다는, 차라리 여름이 줄 수 있는 기쁨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 기쁨은 ‘중국 냉면’입니다.
중국 냉면은 특유의 땅콩 소스와 닭 육수 베이스, 그리고 새우, 오이, 해파리 같은 풍성한 고명이 더해져서 더운 여름의 지친 입맛을 확 깨워줍니다. 냉면이라 차갑고, 고소한 소스 덕분에 기분마저 좋아집니다. 직장인이 점심 한 끼로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에는 이만한 메뉴가 또 없습니다. 먹는 순간, 무더위는 잠시 잊히고 입안에 시원한 바람이 돕니다.
올해는 특히 ‘작년의 나’보다 더 맛있게 먹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작년의 제가 중국 냉면 한 그릇에서 작은 행복을 찾았다면, 올해의 저는 더 깊게 맛보고 더 오래 기억에 남길 만큼 소중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남는 법은 이런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직장 생활이란 때로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 가운데 이런 작고 확실한 즐거움 하나쯤은 필요합니다. 중국 냉면 한 그릇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점점 무겁고 버거워지는 시대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여름을 살아내야 합니다.
올해의 여름은 작년보다 더 뜨겁고 더 빨리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시원한 한 끼가 절실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메뉴는 단연코, 중국 냉면입니다. 매년 돌아오는 메뉴지만 매년 먹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올해의 나는, 올해의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저는 그 시작을 중국 냉면으로 열어보고 싶습니다.
직장인이라면 올해도 놓치지 말고 꼭 드셔보세요. 아마도 내년의 나에게 좋은 추억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내년 여름, 더 더운 날씨 속에서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중국 냉면은 먹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