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이 있다면 한국에는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민 당근 마켓 토스)가 있다. 물론, 규모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전세계에서 미국의 IT 플랫폼에 휩쓸리지 않고 자국의 플랫폼을 저렇게나 많이 보유한 국가도 드물다고 한다.
한국의 네카라쿠배당토는 IT 기업이면서, 그 중 몇몇 기업은 이미 대기업이기 때문에 연봉과 복지 측면에서 뛰어나다. 대다수 구직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선망의 기업일 수 밖에.
전전직장인 종합상사에 함께 다녔던 K후배가 4년 전 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직을 했다. 나는 다른 대기업 S로 이직했고, K후배는 당시에 힙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이직했다. (회계쪽 일을 하는 후배라 산업을 가리지 않고 이직이 수월했던 것 같다) 나도 사실 대기업 S로 이직 전에, 네카라쿠배당토에 지원했드랬다. 하지만 나는 IT 회사 입장에서 개발자도 아니고, 머도 아닌 10년 차의 어중간한 직원일 뿐이었다. 결국 광탈을 했고, 대안으로 당시 떠오르던 배터리 관련 회사의 S기업 계열사로 이직했다.
이후에 K후배는 네카라쿠배당토 중에 한 곳으로 다시 이직에 성공했다. K후배가 네카라쿠배당토에 다닐 때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근황첵을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내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K야, 네카라쿠배당토는 먼가 이미지도 혁신적이고, 기업 문화도 번듯할 거 같애! 부러워! 그리고 봉진이형 완전 멋있잖아!' 그렇다. 나는 IT는 1도 모르면서 IT 업계 1세대 거물인 김봉진님(일명, '봉진이형')을 흠모하고 있었다.
한 때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봉진이형
그러자 K의 대답,
'형님(K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말도 마쇼!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회사에 와보니 완전히 꼰대 천지입니다. 처음에 회사가 설립되고 커질 때는 혁신적인 사람이 많았는데, 회사 규모가 커지니깐 결국 꼰대화 되더라 이겁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건거야?'
그 때쯤 K는 꽤 취해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헤겔의 변증법이니, 정반합이니 주절주절 모르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결국 나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한 셈이다.
K후배와 그렇게 어정쩡하게 술자리를 마치고 다른 지인들에게 우아한형제들의 사정을 더 들어봤다. 독일의 딜리버리 히어로에 인수된 뒤로는 예전의 혁신적인 모습은 보기 힘들다는 것이 공통된 답이었다. 물론, 여전히 재택근무도 자유롭고 복지는 업계탑 수준이지만, 초창기의 우아한형제들의 창업 정신을 잃은 것 또한 사실이란다. 그리고 창업 멤버들이 지금은 많이 떠났고, 그 자리를 독일에서, 다른 IT 대기업 출신들로부터 채워졌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언론을 통해 배달의 민족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가맹점 수수료 문제, 광고비 문제, 라이더 대우 문제 등등. 봉진이형을 흠모했던 1인으로써 안타깝기 그지 없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처음에는 혁신으로 중무장한 혁신 기업이 생기는가 싶더니 그 혁신 기업도 결국은 그저그런 문화를 가지고 적절히 꼰대와 빌런이 섞여있는 회사가 되어 가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내 생각을 옮겨본다.
1. 지킬 게 없을 때와 지킬 게 많을 때의 차이
- 테슬라는 모든 판매를 인터넷 혹은 모바일로 진행한다. 반면 현기차는 여전히 딜러를 통한 차판매를 선호한다. (최소한 국내에서는) 딜러를 통해 차를 구매하면 장점도 있겠지만 여러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어, 딜러마다 가격 차이라든가. 서비스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 들었지만. 그래서 현기차에 다니는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아직도 딜러를 통해서 차를 판매하는 이유가 머니?' 후배의 대답은 반문 형식이었다. 그렇다고 딜러를 다 해고할거냐고. 어쨌든 과거에 딜러를 통해 차량을 많이 판매했고, 그 공도 무시할 수 없다며 그런 사회적인 이슈는 어떻게 해결할거냐고. 사측에서도 분명 딜러 판매를 통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지만 딜러 직군에 진 빚이 있기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테슬라는 처음부터 인터넷망을 통한 판매만을 고수했기 때문에 딜러에게 진 빚이 없다. 그래서 과감히 시대에 부응하는 판매 정책을 밀고 나간 것이다.
2.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 중,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더 가치가 떨어지는 화폐가 더 가치 있는 화폐를 시장에서 밀어내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기업도 비슷하지 않을까?처음에는 혁신으로 똘똘 무장한 조직이 점점 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고 그중에 꼰대 문화인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는 것. 인간이란 본디, 익숙한 것에 쏠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제 아무리 처음에 혁신으로 시작했다고 한들, 끊임없이 혁신을 지속하지 않고 긴장을 잃으면 점점 악화에 매몰당하지 않을까싶다.
3. 배달의 게르만족(우아한형제들에만 해당)
- 우아한형제들이 독일 IT 기업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된 후, 유심히 지켜보았다. 내부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보고 내린 결론은, 배달의 게르만족의 독일인 경영진은 한국의 문화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혁신은 사라지고 오직 숫자로만 평가한다는 느낌이 든다. 1등 배달앱을 인수했지만, 점유율을 넓히기는 커녕 1등 배달앱의 아성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영하지 않을까.
봉진이형도 배달의 민족이 자리를 잡은 후, 일본과 동남아(특히, 베트남)로 야심차게 진출했지만 말아먹은 것으로 안다. 일본에서는 De-mae Can과 베트남에서는 Grabfood에 고전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에서 전설로 불린, 봉진이형도 배달앱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경쟁에서 졌다.물론 내부의 복잡한 사정을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분명 분석에 한계는 존재한다.
후배는 결국, 1년 반정도 네카라쿠배당토에 근무한 뒤, 성장의 한계, 관료화된 회사 조직의 한계를 느끼고 최근 더 나은 혁신을 위해 AI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스톡옵션도 좀 챙긴 것으로 안다) 진정 능력 인정.
후배의 이직을 보며, 혁신으로 성장한 기업이 규모를 갖추고도 혁신을 유지할 수는 없는지 의문이 든다. 몇 해 전, 우아한형제들의 일하는 방식인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을 보고 충격을 받았드랬다. 다시 한 번 읽어본다. 그리고 내가 가야할 우아한 방향에 대해 다시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