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불혹不惑인 40에 이르렀어도 나는 여전히 운전이 두렵다. 운전 할 때는 특히 정신을 많이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많다.
차선을 언제 바꾸면 좋을까? 이러다가 차선을 바꾸지 못하는게 아닐까? 저 차의 경적 소리는 나때문인걸까? 나때문이라면 왜지? 내가 운전을 못해서 그런가? 오늘 따라 차가 많은데 사고 나는 건 아닐까? 등등운전을 하다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들고, 걱정도 증폭된다. 그래서 운전이 더 두렵다.
내가 운전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원래부터 운전에 소질이 없는 까닭이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변명을 조금 더 붙이자면, 나는 운전을 늦게 배웠다. 면허는 수능 끝나고 일찍 땄지만, 처음 수 년동안 면허 갱신을 하고도 운전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경남에서 서울로 대학 공부를 위해 올라온 가난한 촌놈에게 세상은 냉정했다. 그렇게 운전을 못하는 상태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지만 취직과 동시에 잦은 해외 출장과 주재원 근무를 몇 년간 하다보니 또 운전 배울 기회를 놓쳤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겁도 함께 먹어갔다.
서른이 넘어,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운전 공포증은 더해갔다. 하지만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려면, 운전을 반드시 해야했다. 대리가상무님과 외근가는데 대리를 조수석에 태우고 상무님이 운전하는 상상은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받아드려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직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고자, 틈틈히 사설 운전 연수를 받고, 주말에는 렌트카를 빌려 그 때 여자친구(지금의 아내)를 태우고 서울 인근을 많이도 다녔다. 많이도 다니면서 사고도 많이 냈다. 한 번은 여자친구를 태우고 차가 거의 반파가 났다. 애먼 바위를 들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나와 여자친구는 다치지 않았고, 또 다행히 렌트카 보험을 빵빵하게 사전에 들었기 때문에 5만원으로 사고 처리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순간이었다.
내가 엄청 좋아하지만 한 편으론 엄청 질투하는(소설쓰는 실력을 질투한다) 장류진 작가님의 <연수>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초보 운전자가 사설 운전 연수를 받으며 일어나는 일을 매우 실감나게 그린 소설이다. 무엇보다 초보 운전자를 위한 여러 운전 꿀팁이 있어, 잠깐 소설 일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이드미러의 각도는 지평선이 아래위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게끔 조정. 절대 사이드미러에 시선을 오래 두지 말 것. 딱 일초만 볼 것. 이초까지는 허용. 힐끗, 봤을 때 뒤차의 차체가 지붕부터 바퀴까지 온전히 다 보인다면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다는 뜻. 그때 액셀을 세게 밟아 속도를 높이면서 핸들을 슥 꺾어 들어가면 차선 변경 끝.
운전면허학원의 바랜 개나리색 차, 그 구질구질한 시트에 앉기만 하면 나는 처음 겪는 세계에 홀로 내던져진 아이처럼 초조해졌다. 원래 가지고 있던 상식적인 생활 감각이 강제로 리셋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액셀을 너무 밟거나 덜 밟았고, 비상등과 깜빡이 켜는 타이밍을 매번 놓치고, 후방주차를 하겠다고 핸들을 바쁘게 돌리면서 후진과 전진을 반복했지만 결국 똑같은 궤적만 몇번이고 왔다 갔다 했다. 기어를 R에놓는 순간부터는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서 그랬다. 나는 머릿속에서 차의 이미지를 반전시켰다가 다시 반전시키기를 반복하다 어느 게 원본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액셀을 또, 지나치게 세게 밟고, 주차선 뒤편 화단에 한쪽 뒷바퀴를 걸친 채로 강사한테 혼이 났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은 학원 전체에 나밖에 없는 것 같았고, 그런 주제에 도로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어렵게 면허증을 손에 쥔 뒤에 몇번은 도로에 나가봤지만 동승자 없이 운전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핸들만 잡으면 늘 사고와 충돌, 그로 인한 교통 혹은 신체의 마비, 죽음에 대해 떠올렸다. 아무리 연습해도 이제 혼자 운전을 해봐야겠다는 결심보다는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운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만 들었다.
주차하려는 칸의 바깥 선과 어깨선이 직각으로 닿는 상태에서 시작. 핸들을 우측으로 끝까지 돌리고 전진. 사이드미러상에서 뒷바퀴가 주차선의 사 분의 일을 밟을 때 스톱. 기어를 R로 바꾸고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끝까지 돌리고 후진. 기어가 R일 때 핸들 방향이 헷갈리는 것은 당연. 처음엔 누구나 헷갈림. 안 헷갈리는 사람이 이상한 것. 그럴 때는 자동차의 궁둥이를 틀고 싶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린다고 생각하면 쉬움. 마무리는 방지턱에 궁둥이가 걸릴 때까지 천천히 후진하다가 단정하게 정차하면 끝.
최근에 다시 로보택시(미국자동차기술협회 기준으로 4단계 이상의 자율주행 자동차)가 연일 화제다. 일론 머스크가 8월 8일 로보택시를 공개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율 주행의 시대가 드디어 도래했다고 우려가 혼종된 기대를 표하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자율주행에 대한 투자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현재 기준으로 서부를 중심으로 꽤 괄목할만한 성과도 거두고 있다. 구글의 웨이모, 아마존의 죽스, GM의 크루즈등이 대표적이다. 객관적으로 로보택시는 인간 운전자보다 나을 수 있다고 한다. 운전하면서 산만해지거나, 카톡하거나, 졸거나 할 일이 없다. 그리고 음주 운전도 하지 않는다.물론 액셀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을 걱정도 없다.
<아마존의 로보택시, 죽스. 출처: Zoox>
그렇다면 나와 같이 운전 공포증이 있는 이들에게는 자율 주행이 기쁜 소식이기만 한 걸까? 윤리적인 문제, 안전 이슈와 관련된 기술 문제, 운송 관련된 일을 하는 노동자 일자리 문제 등등 여러 산적한 문제와 논란이 있긴 있다. 하지만 최초의 자동차 사고를 생각해보자. 최초의 자동차 사고로 기록된 일은, 1896년 영국의 한 공원에서 한 부인이 시속 4마일(약 6.4㎞)로 달리던 ‘모터 마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사망사고였고,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 당시 검시관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이 말은 곱씹어 볼만하다. 과연 130년 지난 지금,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120만명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현실을 보고 130년 전 검시관은 어떤 말을 할까? 초기에 기술의 도입은 언제나 논란 거리였고, 걱정 거리였다. 자율 주행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결국에는 인류의 한 축을 이루는 기술로 자리 잡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자율 주행이 미래 언젠가는 대세로 자리 잡을 상황을 가정할 때, 운전을 이제 배워야 하는 이, 나같이 운전이 두려운 이는 운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운전이 두려운 나의 대답은, ‘그럼에도, 현실을 살자. 그리고 운전을 하는 데 까지 해보자’이다. 내가 늦게라도 운전을 해서 벅찬 순간이 딱 2번 있다. 내가 30살에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지금 40살이니 5년에 한 번 꼴로 그런 일을 겪었다. 첫 경험은 바로 제주도 여행이었다. 30대 중반에 여름 휴가를 맞아, 당시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와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드랬다. 하지만 서로 일정이 정확히 맞지 않아 내가 하루 먼저 제주도로 갔었다. 그 하루 동안 나는 렌트카를 타고 제주 구석구석을 다녔드랬다. 혼자 다이빙샵을 가서 범섬에서 스킨스쿠버도 했다. 그리고 제주도가 생각보다 훨씬 넓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제주도는 서울 면적의 3배이다) 그 시절 그 제주도에서 나는 혼자 운전을 하며,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아… 나이 먹어서도 운전 잘 배웠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2년 전에 미국 미시간으로 솔로로 출장을 가서, 렌트도 직접하고 혼자서 미시간주 곳곳을 다니며 꽤나 성공적으로 당시에 미션을 해결한 일이었다. 이라크 방문 기록 때문에, 미국 입국부터 쉽지 않은 출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밟아 본 적이 없었다. 즉, 미국은 처음이라는 얘기다.
광화문에 있는 미국대사관에서 인터뷰를 치르고서야 ESTA가 아닌 정식 10년짜리 비자를 받았다.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두렵고 막막했드랬다. 겨우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공항 렌트카샵을 찾아갔다. 출발 전에 수없이 유튜브며 블로그를 보고 학습을 했음에도 쩔쩔맸다. 겨우 렌트카샵에서 쉐보레 이쿼녹스를 받아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야무지게 켜서 첫 행선지를 찾아갔다. 한참 긴장해서 운전하며 가고 있는데… 트로이트 외곽 도로에서 이쿼녹스의 계기판에 빨간 경고등이 떴다.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지만, 진짜 빨간 경고등이었다. 영어로…Warning… Needed Inspection… 그 때의 막막함이란… 하필 악명높은 디트로이트 8마일(에미넘이 주연으로 나오는 그 영화 8마일 맞다) 근처에서 사단이 난 것이다. 많이 울고 싶었다. 실제로 울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울었을 것이다.
짧은 영어로 렌트카 서비스센터에 전화해서 한 30분을 떠듬떠듬 통화했다. 이후, 30분을 더 기다린 끝에, 견인차가 왔다. 나는 덩그러니 8마일 근처에 남겨졌고, 친절한 렌트카 회사에서 30분 후에 우버를 보내줬다. 그 우버기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덩치 큰 흑인이었고, 현대차의 시커먼 구형 제네시스를 몰았다. 나는 다시 공항 렌트카로 가서 새로운 이쿼녹스를 받았다. 다행히 새로운 이쿼녹스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5일 간의 첫 솔로 미국 출장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좋은 추억만 남아서일까? 나는 첫 미국 출장 때문에 운전을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와의 차이점은, 제주도에서는 바로 운전을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시간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시간차로 그런 생각이 밀려왔다. 아마도 미국에서 너무 힘들고, 긴장한 나머지 ‘운전을 잘 배웠네’ 이런 낭만적인 생각은 들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운전을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이 고된 인생을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장류진 작가님도 그러지 않았던가.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고. 나도 그러고 싶고,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붙이자면, '쉽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
하지만 어쨌든 돌이켜 보면 첫 미국 솔로 출장은 많이 재밌었다… 내가 운전을 하지 못했다면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정신 승리를 위해서 결국 이렇게 생각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도 나는 두 건의 사고를 쳤다. 특히, 산지 얼마 안되는 SUV라서 아내에게 엄청 욕을 먹었다. 한 건은 강릉에서 조수석 일부를 꽤 긁었고(왜 그랬는지는 진짜 모르겠다. 그 때 운전할 때 머가 씌인 것 같기도 하고…), 한 건은 어두운 지하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궁둥이를 빼고 후진 주차를 하는데 기둥에 '톡 튀어나온' 두꺼비 집 같은 것(?)을 보지 못했다. 진짜 못봤다. 그래서 운전석 사이드 미러가 많이 망가졌다… 요즘 나온 차는 사이드 미러에 카메라도 있고 해서 수리하는 데 돈 많이 들었다… 욕 먹을 수 밖에.
나는 여전히 운전이 두렵고, 사고를 치지만 나는 운전을 계속 할 것이다. 어떤 일이 내 기억 속에 남을지 모르기 때문이고, 그래서 마냥 자율 주행을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힘든 와중에도 그래도 5년에 한 번 정도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음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