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왠 감사냐구요? 산업화의 역군으로 우리나라를 잘 살게 만들어 주셨으니깐요. 모르긴 몰라도 사장님께서 젊은 시절 그러니깐 후배 M의 나이 때인 30살 초반에는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고, 또 술마시고(어쩔 수 없이, 필요에 의해, 고객의 접대를 위해 마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희 사장님도 그러시거든요. 사장님은 다 똑같나 봅니다) 매일같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출근하고, 밤이슬을 닦으며 퇴근하여, 결국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사장님께서는 더더욱 직원들을 채찍질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제 후배 M을 포함해서요.
라떼는 하루에 15시간 근무했어.
라떼는 주말도 없이 일만했어.
라떼는 휴가가 어딨었어?
라떼는 잠자는 아이보면서 출근하고, 잠자는 아이보면서 퇴근했어.
라떼는... 라떼는... 라떼는... 라떼는...
압니다. 압니다. 사장님. 제가 아는 어느 전무님도 그러시거든요. 저는 사장님과 전무님의 노력을 폄훼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으니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보자 이겁니다.
사장님이 한창 사회생활을 하던 80년 대 말과 90년 대 우리나라는 그저근면 성실이 답이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바로 옆나라 일본을 따라잡아야 했고, 미국을 본받아야 했으며, 유럽을 벤치마킹 했어야 했으니깐요. 그덕분에 지금은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동남아와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대한민국을 닮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는 얘기를 알고 계실 겁니다. 그 말인즉슨, 이제 우리나라는 따라잡아야 할 나라도 없고, 본받아야 할 나라는 더더욱 없습니다. 설마 미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니시지요? 아니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가야합니다. 그럴려면 성실하게 남을 쫓아하던 관성을 버리고,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똑같이 따라잡아야 할 나라가 없거든요. 그러면 어떻해야 하나요? 결국, 참신한 생각과 대화합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또 어떻게해야 할까요? 사장님은 당연히 훌륭하셔서 나름대로의 답을 가지고 있겠지만, 저는 책을 추천합니다. 요즘 이북도 너무 잘 나오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핸드폰으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밀리의 서재 추천드립니다. 제가 밀리의 서재북마스터라 홍보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써보니 UX가 탁월하더군요. 책도 다양하구요)
<쇠퇴하는 아저씨 세대의 처방전>과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 선생께서 한 얘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조금 길수도 있으나 끝까지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흥미로운 중년이 되기위해서는 유튜브만 봐서는 안됩니다. 이게 다 흥미로운 중년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개미집에는 보통 70퍼센트의 일하는 개미와 30퍼센트의 일하지 않는 개미가 있다. 이 30퍼센트의 일하지 않는 개미를 집어내 70퍼센트의 일하는 개미만 남겨놓으면 어떻게 될까? 이 일하는 개미 중에서 다시 일하지 않는 개미가 나온다. 이 현상 자체는 옛날부터 잘 알려져 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연구한 결과, 의외의 사실이 발견되었다. 모든 개미가 100퍼센트 일하는 개미로 구성된 개미집과, 70퍼센트의 일하는 개미와 30퍼센트의 일하지 않는 개미로 구성된 개미집을 비교해보니 생존 확률은 후자 쪽이 높다는 것이다. 100퍼센트가 일하는 개미라면 위기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개미집에 물을 잔뜩 흘려 넣거나 불꽃을 집어넣는 장난을 치곤 한다. 이럴 때 모든 개미가 일을 하고 있는 개미집에서는 이 위기 대응을 위한 자원을 배분할 수가 없다. 모든 개미가 일하는 개미라는 것은 모든 개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의미 있는 일’은 군집의 존속에 필요한 일이라는 뜻이다. 이런 일에 투입된 이상 어떤 사태가 일어나도 자기 일을 팽개칠 수는 없다.
즉, 일하지 않는 개미는 위기 대응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30퍼센트의 일하지 않는 개미를 배제했을 때 남은 70퍼센트의 일하는 개미 중 다시 30퍼센트의 일하지 않는 개미가 생긴다는 것은 ‘일한다’거나 ‘일하지 않는다’는 특성은 각 개체에 내재된 속성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사를 조직론에 적용하면 어떨까? 가동률 100퍼센트의 조직에서는 존망이 달린 위급한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실제 조직론의 세계에서 그런 연구도 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스테판 톰케 교수는 전문직으로 구성된 팀의 가동률과 생산성을 연구해 평균 가동률이 80퍼센트에서 90퍼센트로 올라가면 처리 시간은 두 배 이상이 되고, 가동률을 더 높여 90퍼센트에서 95퍼센트가 되면 처리 시간은 거기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다는 것을 밝혀냈다.
가동률이 80퍼센트라는 것은 10명으로 구성된 팀 중 2명은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동률 80퍼센트인 팀과 90퍼센트인 팀을 비교해보면 후자의 생산성이 전자의 반 이하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톰케 교수의 지적은 ‘10명 중 2명이 일하지 않는 팀’과 ‘10명 중 1명이 일하지 않는 팀’을 비교했을 때 전자가 생산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우리의 자연적인 감각에서는 상당히 위화감이 느껴지는 결과다.
가동률이 올라가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오해는 우리 중 대다수가 ‘제조업’의 모델로 생산성을 사고하는 습관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톰케 교수는 “제조나 거래 처리처럼 변화가 적고 예외적인 돌발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예측 가능성이 큰 단순 업무에서는 가동률의 높음과 생산성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이 개미집의 연구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이처럼 자연과학 영역의 새로운 발견이나 가설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계기가 되는 일이 적지 않다.
밀리의 서재의 놀라운 기능. 사장님도 꼭 한 번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생명체의 본능은 생존이라고. 어쩌면, 생태계에서 가장 약한 생명체인 개미가, 본능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게 저런 지혜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냥 밀어부치고, 쪼으고, 압박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개미를 통해 배웠습니다. 부디, 개미의 조언이 건방진 소리로 치부되거나 혹은, 순진한 헛소리로만 들리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참고로, 32개월된 제 아이 HoYa도 개미를 참 좋아합니다. 아직 '아빠 뽀뽀 시쪄' 정도의 말 밖에는 못해서(남자 아이가 말이 늦는 것 같습니다) 그 속내를 정확하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HoYa는 순수한 마음으로 개미를 배우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잠시합니다.왜냐하면 HoYa도 엄밀히 생태계에서는 약자이니깐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개미를 배우지 않나라는 순진한 생각도 해봅니다.
체면때문에 개미 공부가 꺼려진다면, 저랑 같이 배우시지요. 저는 이미 HoYa와 주말에 개미를 실컷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르베르베르 선생의 <개미>도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사장님. 저는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가을은 잠자리의 계절이니깐요. HoYa와 함께 이번 가을에는 잠자리를 유심히 관찰해볼 생각입니다. 쓸 데 없는 짓이라구요? 그럴수도 있죠. 하지만 오늘 제가 개미를 통해 큰 가르침을 드렸는데도 그런 소리를 하시나요?
백 번 양보해서 잠자리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HoYa와 함께 잠자리를 본 시간과 추억은 남겠죠.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의미없는 술자리나 골프보다는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요? 설마 사장님은 젊었을 때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질투하시는 건 아니지요? 그러면 너무 꼰대같아 보이니 삼가바랍니다.
저는 진심으로 사장님의 회사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제 후배 M이 너무 가엽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