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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l 25. 2024

영업직에서 살아남기

대학생 삐끼가 살아남았던 아이디어

야마구치 슈 선생은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에서 창의성과 아이디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풍부한 지적 축적은 창조성과도 연관된다. 일반적으로 창조성이라고 하면 타고난 것으로 후천적으로는 높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느 정도는 후천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뇌과학이나 학습심리학의 연구로 밝혀졌다.


창조성을 높이기 위해 유효한 수단의 하나로서 많은 사람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유추의 활용이다. 유추란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사고방식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유추를 활용해서 성공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바로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비행기의 정비시간을 단축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자동차 경주인 인디500(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경주장에서 매년 5월 30일에 실시하는 자동차 경주)의 정비작업을 상세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전용 공구의 활용’과 ‘사전 준비’가 열쇠라는 것을 배우고 45분이 걸리던 정비시간을 15분까지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회전초밥도 비슷한 경우다. 회전초밥 아이디어의 기본 바탕을 제공한 것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다. 어느 날, 한 초밥집 주인이 거래처인 맥주 회사의 공장을 견학했다. 거기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태운 맥주가 움직이는 것을 본 주인은 초밥집에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고 거기에 초밥을 올려 돌아가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렇듯 유추는 얼핏 보면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분야의 지혜와 식견을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조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 창조했는지를 묻는다면, 그들은 좀 쑥스러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자기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서로 연결해서 그것을 새로운 것으로 통합시킨 것이다.”
《와이어드(Wired)》, 1995. 2.





내 주위에 K직장인 영업직군의 선후배들이 갈수록 영업을 힘들어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각기 다르다.


오래 전부터 영업을 했던 선배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요즘은 글로벌하게 경쟁하게 돼서 참 영업하기 힘들어. 사람들이 이미 다 알아. 아니, 중국 물건이든 미국 물건이든 클릭 몇 번에 다 구매할 수 있는 시대잖어!  아이가 둘인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사냐..."


이제 영업을 시작하는 후배들은,


"형... 저 진로 잘못 선택했나 봐요... 영업일이 맞지 않아요. 전화하는 거도 싫고, 사람 만나는 건 더 싫어요. 그런데 다른 회사 구매 결정하는 사람들은 나이도 많고, 만나서 술먹거나 주말에 골프 치자고 해요. 어떡하죠?"


이런 선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직접적인 조언을 꺼려한다. 조언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humorist/19


그래서 직접적인 조언보다는 그냥 가볍게 영감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내가 대학생 때 한 달에 세후 5백만 원(사실 세전/세후가 같았다. 국가에서 걷어가던 세금이 없었다...)을 벌었던 아르바이트 경험을 들려주곤 한다.


아르바이트라고 불렸지만, 진짜 진지하게 진로 변경을 생각했을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인 2년 가까이 단란주점 삐끼 생활을 했드랬다. 물론, 연속으로 2년을 쭉 하지는 못했고, 한 학기 휴학을 하고 혹은 방학 때 아르바이트 한 시간을 전부 따져보니 2년 정도 되었다.


20살 때 호기롭게,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 진학을 했지만 집안의 지원은 거의 없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비와 생활비, 책값을 충당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군생활 중에 아프가니스탄 파병 기회를 잡았고, 파병 때 벌었던 천만 원을 학비에 보탤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유학하기에는 언제나 돈이 모자랐다. 고시원을 전전하며 학교 식당에서만 밥을 먹었지만, 집안의 지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대학생 때는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목이 말랐다. 그런 목마른 사슴을 상대로, 동네 아는 형이 (덩치는 크고 인상은 험악한) 나에게 꼭 맞는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소개했다. 바로 단란주점 기도. 기도하면 신성한 종교적인 행위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단란주점의 기도는 다소 다른 의미이다. 바로 가게를 지키는 혹은 가게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사람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왜 단란주점 가게를 지키는 사람을 기도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그 어원을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내 생각으로는, 기동(伎童)이 기도로 발음되지 않았을까 싶다. 재주 기伎  + 아이 동童, '재주를 가진 사람 혹은 아이'


그렇게 나는 기도하는 자세로 단란주점 아르바이트 '기도'에 입문했다. 그리고 영역을 점차 확대해 서빙(일명, '웨이터')을 하고, 필드로 나가 호객행위(일명, '삐끼')까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삐끼로 나선 이유는 오직 하나, 돈 때문이었다. 투입 시간이나 노력대비 가장 가성비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기라성 같은 삐끼 선배들에 비해 나는 가진 게 없었다. 말발도 떨어지고, 연속해서 이 바닥에 일하지 않고, 일을 하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 학기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단골손님을 만드는 데 한계가 명확했다.


그 당시 나는 베테랑 삐끼들과 차별화를 고심했다. 어떻게 다른 영업 방식을 취할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다른 삐끼들의 영업 방식을 지켜만 보았다. 대부분의 삐끼들은 지나가는 어떤 남자 아저씨 무리들을 보고 본인의 명함을 내밀며 뻔한 멘트를 날렸다.


명함에는 보통, 이렇게 적혀 있었다.


XX 단란

YY 지배인 혹은 총괄 혹은 전무 혹은 부사장

가명 혹은 진짜 이름

핸드폰 번호


그때 주머니 지갑에서 명함과 비슷한 무엇이 들어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학생증. 명함에 비해 조금 두껍긴 하지만 명함과 비슷했다. (맥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보고, 회전 초밥을 생각한 어느 일본인 생각나는 순간이 아닌가? 너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다소 억지스러운 점.. 인정한다)


XX 대학교 OO학부 A과

200XXXXXXC

이름


그때 불현듯 어떤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이라 어눌했던 나의 말발이 어쩌면 손님들에게 진정성으로 와닿을 수 있을 거라고. 그때부터 나는 손님들에게 명함을 돌리지 않고, 한 명 한 명에게 나의 학생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생임을 강조하며, 학비를 벌고 있으니 이번에 도와주시면 꼭 학교를 졸업해서 사회에 보답하겠다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멘트를 날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무모했다. 하지만 다른 삐끼들과는 어떻게든 다르게 되기 위한 생각과 노력들은 인정한다)


물론, 내 전략이 무조건 먹혀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꽤 높은 확률로, 나는 호객행위에 성공할 수 있었고,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학자금 한 번 빌리지 않고,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이런 얘기를 고민이 많은 영업직군의 형과 동생들에게 하릴없이 들려준다. 그러면 딱 들어맞는 솔루션을 얻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상대방에게 꽤 많은 자극이 되는 혹은 위로가 되는 이야기 한토막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지금, 평범한 회사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회사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경쟁력은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해결 능력이 빛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던 게 주요했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것은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던 내가, 명함을 보며 학생증을 떠올렸던 17년 전 대학생 삐끼였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던지는 교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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