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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l 27. 2024

맞벌이 부부 자녀 교육 고민

12월생 늦생

아내와 나의 아들인 인생 32개월 HoYa 선생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즉, 나의 아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은 '외할머니(즉, 나의 장모님)'이다.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고?


'사땅해(사랑해)'라는 말을 엄마에게 가장 많이 하고, 외할머니에게는 두 번째로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HoYa의 아빠(즉, 나)에게는? 애석하게도 거의 하지 않는다.


나의 엄청난 요구와 질문에(가령, HoYa는 아빠 사랑해?) 아주 가끔 '사땅해'라고 대답하더라도, 곧 '아니아니 아빠 시쪄.'라는 식으로 바로 수정해 버린다.


그래서 섭섭하냐고? 섭섭하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육아에 시간과 노력을 거의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와 장모님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HoYa는 '사땅해'를 날리는 것이리라.


그래도... 뽀뽀를 요청하는 아빠(즉, 나)의 입을 야무지게 찰싹 때리고 도망가는 건 좀 너무하지 않니? HoYa. 그리고 내가 입 때린 걸 지적하면,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달려가 '아빠 뽀뽀 시쪄.'라고 일러주는 건 너무 치사하지 않니? HoYa.


아내의 육아에 대한 희생은 나와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눈물겹다. 왜냐하면 아내도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부부는 그 유명한 대한민국 K맞벌이 부부이다.


아내와 장모님의 절대적인 희생과 나의 보잘것없는 희생으로 Hoya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32개월 차가 되었다. Hoya는 2021년 12월 생으로, 흔히 말하는 '늦생'이다. 아내와 나는 초보 엄마빠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이 '늦생'으로 인한 염려가 육아에서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Hoya는 첫 번째 생일이 지나 어린이집에 다녔고, 거기서 1차 충격을 받았다. Hoya의 걸음마가 조금 느린 편이었는데, Hoya 빼고는 같은 반 친구들이 다 걸음마를 띈 상태였다.


그리고 첫 번째 어린이집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어 결국 장모님 집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옮겼는데, 거기서도 Hoya의 발달이 가장 느렸다. 신체적인 면이나, 언어를 포함한 발달적인 측면 모두. 어린아이들은 하루하루, 한 달 한 달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2021년 생이라고 해도 발달의 차이는 엄청나다.


가장 오른쪽이 Hoya, 어린이집 동갑내기 같은 반 친구라고 해도 발달의 속도는 다 다르다.


가끔씩 Hoya 하원을 시키기 위해 어린이집에 가면 깜짝 놀랄 정도로 아이마다 생일마다 발달의 정도가 다른 것을 깨닫는다. 같은 반 친구들 중에 생일이 빠른 친구는 미끄럼틀을 서슴없이 타는데, Hoya는 신체 발달의 한계로 인해 부러운 눈으로 같은 반 친구가 미끄럼틀을 타는 것만 볼 때 마음이 쓰였드랬다. 오죽하면 아내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12월에 출산한 본인을 자책할까…


‘늦생’의 부모들은 아이가 어릴수록 걱정이 많아진다. 행여나 같은 반 친구들을 따라잡지 못하는(아니, 따라잡을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자존감이 낮아지지는 않을런지… 그리고 실제로 주위 ‘늦생’ 부모에게 들어보면, 초등학교 때 까지도 어쩔 수 없이 또래에 비해 약간씩 뒤쳐지는 핸디캡이 있었음을 토로한다.


여기서 잠깐,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왜, 개개인의 성장과 특성은 무시된 채, 호적을 기반으로 일정 나이가 되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학습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거부터 그랬을까?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나이와 상황과 신분도 각기 다르지만, 학습 수준에 따라 모여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와 그 이전부터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이 사당에 모여 각자 공부를 하며, 훈장은 그것을 지원하면서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아주 생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맞춤형 교육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육 시스템, 호적에 등록된 나이만으로 아이들과 학생들을 구분하는 시스템은 언제부터 도입되었을까? 조사를 해보니, 식민 지배 영향으로 일본의 메이지 정부 교육 방침을 따랐던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도 메이지 정부 이전에는 조선의 서당과 비슷한 시스템인 ‘데라코야’라는 교육 시스템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메이지 정부의 교육 방침과는 맞지 않았고, 다수의 학생을 모아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공장처럼 일률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이는 결국, 호적에 기반하여 특정한 나이가 되면 개인의 개성과 발달 상태는 무시된 채 획일적으로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시스템으로 귀결됐다.


획일화되고 일률적인 교육 시스템은 80~90년 대에 우리나라에서 산업화 일꾼을 키워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산업화 시대를 지난 지금까지도 공고히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볼 수 없는 대한민국 특유의 치열한 경쟁 교육 시스템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교육 시스템은 계속 이렇게 호적에 기초한 나이를 구분으로 진행되어야만 할까? 나는 회의적이다. 실제로 핀란드 의무교육의 구조는 옛날의 조선처럼 이미 개개인의 특성과 발달 상태에 맞게 진행되고 있다. 학생에게 맞춘 개별 학습 계획이 수립되고 학생의 강점, 약점, 관심사, 학습 스타일 등을 고려하여 작성되며 교사와 학생, 부모가 함께 협력하여 목표를 설정한다고 한다. 핀란드의 교육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되는 이유다.


산업화 시대에는 비교적 정답이 쉬웠을 것이다. 정답은 경제 성장이었기 때문에, 성장에 알맞은 인재를 빨리빨리 키우기 위해 획일화된 교육을 진행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답이 없는 시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성장만을 외치는 외침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된다. 개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맞춤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12월 늦생 아들 HoYa가 걱정을 시작으로, 꽤 넓고 깊숙이 미래의 교육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생은 부모가 처음인지라, 꽤 괜찮은 생각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고마워. H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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