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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그다드Cafe Jul 30. 2024

사직을 권고하는 이의 마음

...

K과장님에게...


처음 사직을 권고받고 많이 놀랐을 거라 짐작됩니다. 그 표정을 제가 처음 봤으니깐요.


4개월 전에 제가 과장님을 뽑은 이유로, 그리고 3개월 수습 기간 동안 과장님의 팀장이라는 이유로 마지막 사직의 권고를 해야만 했더군요.


마지막 면담 때 제 첫마디가 기억나는지요?


"미안합니다..."


지금도 같은 마음입니다. 미안합니다...


과장님은 물으셨죠. 왜냐고. 능력이 부족했냐고.


마지막 면담 때도 말했지만, 절대 과장님의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습니다. 계속 회사에 남아 있었더라도 분명히 플러스가 되었을 겁니다. 이건 확신합니다.


그런데 왜?라고 과장님께서 물었죠. 혹시 내가 잘 못 생각했나 싶어 이 후로도 고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 대답은 똑같더군요. 



"과장님이 남으면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회사에서 바라는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과장님 급 정도의 직급과 나이 정도면 우리 회사에서는 더 많은 기대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를 해내야만 합니다. 그래야 주위 동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과장님께서 회사에 남는다면, 과장님과 회사와 나를 포함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힘들 것입니다. 결국 과장님의 성향과 능력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능력의 갭이 분명 존재합니다. 이 갭을, 문제의 그 갭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최종 결론입니다."



과장님은 모르셨겠지만,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과장님보다 회사에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면접을 보고 과장님을 추천했다는 이유로,


수습기간 동안 과장님의 팀장이었다는 이유로,


이런 고민까지 해야 되나 싶어 대상 없는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저도 이런 사직을 권하는 일은 처음이었으니깐요. 그리고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노력도 꽤 많이 했습니다. 우리 팀이 아니더라도 회사의 다른 팀에서는 자리가 있을지 몰라서요. 여러 팀장님들과 상의도 했습니다. 하지만...


3개월 수습 기간이 끝나갈 무렵, 저는 이미 마음이 섰습니다. 아까 말한 그 갭을 줄일 수가 없겠더군요. 아마 과장님이 남아 있었어도 팀장으로서 제가 중간에서 제일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았어요. 


혹시 내가 이기적인 마음에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과장님을 과소평가하고 있나 싶어 걱정이 되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머라고 남의 인생에 이렇게나 개입하는지 덜컥 겁도 났습니다. 그래서 주위 동료들에게 많이 물어봤습니다. 위아래 가리지 않고, 솔직한 조언을 구해봤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더군요. 과장님이 능력은 있지만 분명히 남는다면 회사에 플러스는 되겠지만 아마도 많이 힘들 거라는... 과장님도, 팀장인 나도, 주위 동료들도... 그래서 힘들게 힘들게 결정 내렸습니다.


과장님. 저도 회사를 다니는 한, 언젠가는 과장님의 입장에 놓이겠지요. 원치 않는 사직을 권고받는 일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과장님께 지은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혹시 제가 마지막에 했던 말 기억하나요?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던 말... 하지만 과장님 성격상 그러지 않을 거라고 짐작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빈 말로 건넨 말은 아니니, 정말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과장님. 부디 건강하고, 건승하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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