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의 시대, 균형의 요청

by 정용우

화분을 기르다 보면 주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화분을 돌려주는 것이다. 식물은 본능적으로 빛을 향해 자라는 성질이 있다. 이는 옥신이라는 식물 호르몬의 작용으로 빛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그 방향으로 잎과 줄기를 집중시킨다. 이 때문에 계속 한 방향에서만 햇빛을 받게 되면 식물은 점점 한쪽으로 기울고, 균형을 잃는다.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생장 자체에도 무리가 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화분을 주기적으로 돌려가며 모든 방향으로 골고루 빛을 받게 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다.


이 단순한 원리는 사람의 생각 습관과 사회적 태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가 한 방향만 고집할 때, 삶의 균형을 잃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관점과 방향을 마주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고정된 방향에만 두는 실수를 저지른다. 특히 요즘처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마치 빛이 들어오는 창가만을 바라보는 식물처럼, 우리는 편향된 정보, 익숙한 사고방식, 자기 진영의 주장만을 고집스럽게 좇는다.


"한쪽만 보려 하고, 다른 쪽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단지 개인의 고집이나 습관을 넘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예컨대 정치적 편향이 극단화된 현상이 대표적이다. 진보는 보수를, 보수는 진보를 ‘대화의 상대’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본다. 타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틀렸다는 증거’를 찾기에 바쁘고, 다름을 곧 틀림으로 간주한다. 특히 정치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자극적 언어와 극단적 시각이 조회수를 만들고, 시청자의 사고를 점점 더 편협하게 만든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편향된 기사와 영상이 넘쳐나며, 이는 대화보다는 분노를 유발한다. 이런 정보들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기존 신념만을 더욱 강화시켜 결국 균형 잡힌 시각을 무디게 한다.


언론 소비 습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을 강화해주는 미디어만 선택적으로 소비하며, 다른 관점의 뉴스는 외면한다. 알고리즘은 이런 편향을 강화시켜, 우리가 보게 되는 정보의 세계를 점점 좁히고, 고착화시킨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대화는 단절되고, 극단적인 생각만이 살아남게 된다.


교육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특정한 가치나 이념만을 강조하고, 다양한 시각은 금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생각하는 법’이 아니라 ‘말 잘 듣는 법’을 배우게 된다. 다양한 견해를 접하지 못한 채 성장한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이 될 때, 우리는 또 다른 고정된 사고방식을 마주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현상은 학력이 높고 지적인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이 많을수록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낮게 보게 되고, 자기 확신은 더 단단해진다. 이런 사람은 외부의 반론을 단순한 의견 차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향한 공격처럼 인식하기 쉽다. 그래서 확신은 무지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성의 함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반론이 제기되면 자신의 신념을 더 굳히는 쪽으로 반응하며, 이는 '확증 편향'이라는 인지적 오류로 이어진다. 불행히도 이렇게 강화된 신념은 더욱 큰 오류를 향해 돌진하게 하는 가속장치가 된다. 실제로 역사 속 많은 극단주의와 배타적 편견, 이념적 폭력은 이러한 심리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이 종말의 시작”이라 했는데, 나만 옳다는 독단은 결국 퇴행과 분열로 이어진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개인의 성장에도 장애가 되지만, 사회 전체의 건강성에도 악영향을 준다. 다양한 시각과 관점은 사회를 풍성하게 만들고,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적 해법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한 방향만 바라보는 사회는 마치 한쪽으로 기운 식물처럼 불안정하고 취약하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 빛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회는 균형을 이루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식물을 기르듯 사람도, 사회도 균형 있게 키워야 한다. 그 시작은 아주 단순한 실천에서 비롯될 수 있다. 다른 관점을 듣는 일, 익숙하지 않은 정보에도 귀를 여는 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는 일. 그렇게 우리는 화분을 돌리듯,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볼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시각과 반대 의견에 열린 태도를 지닌 사회일수록 갈등 조정 능력이 높고, 극단적 이념에 휩쓸릴 위험도 낮다는 다수의 사회과학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편향은 사람을 휘게 만들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돌려놓지 않으면 결국 부러지게 된다. 식물이라면 화분을 돌려주면 되지만, 사람은 스스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더 넓은 빛을 보기 위해서라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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