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뿐인 자의 지혜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말이 떠오르면, 숭산 스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스님은 “알려고 하기 때문에 벌써 그르친다.”라고 말씀하셨다. 알고자 하며 생각을 움켜쥐려는 마음이 이미 그릇된 길로 가고 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이어서 스님은 “모를 뿐인 것은 벌써 생각이 꽉 막힌 자리다.”라고 덧붙였다. 이 말은, 우리가 ‘모른다’고 인정하고 그 상태에 머무를 때 때, 진정한 마음의 자유와 평온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모를 뿐’이라는 마음은 비어있는 상태, 분별이 멈춘 무념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 마음의 상태에 들어가면, 마치 꽉 막혔던 길이 뚫리듯 우리의 내면도 자유로워지며, 생각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의 경지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는 어떠한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고, 돌사자가 파도를 헤치며 달리는 것처럼, 태양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계속해서 사고하고, 판단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세상을 보고, 그에 대한 분별과 해석을 내린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때때로 우리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현실에서 습득한 관념과 가치관에 갇히면, 우리는 세상의 본질을 직관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사고는 너무 많은 정보와 규정된 지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숭산 스님은 이 점을 깨닫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을 가질 것을 강조하셨다. 이 마음은,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고정된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의 중요성은 단순히 불교적인 수행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이 ‘오직 모를 뿐’의 마음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내가 그 존재에 대해 판단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운전할 때 그저 운전만 집중해보자. 운전 중에 다른 생각을 떠올리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운전의 역할을 잊지 말고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생각을 버리고 그저 걷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다. 차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 그저 차를 마시면서 ‘모를 뿐’의 마음을 가지고 그 순간에 집중해보자. 설거지를 할 때도, 설거지 그 자체에만 몰두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말자. 이와 같이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오직 모를 뿐’의 마음으로 실천하면, 그 과정에서 마음은 맑고 투명하게 밝아지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 순간 그대로 존재하게 되며, 그 속에서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가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이미 많은 생각과 판단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모를 뿐’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의 가치는 크다. 이 마음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확신을 버리고, ‘모른다’는 자세를 가지면, 우리는 더 이상 자신만의 고정된 틀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게 된다. 나만의 지식과 경험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관점과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 있게 된다.
‘모른다’는 자세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바꾼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 그 확신이 우리를 위험한 지점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크 트웨인은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확신이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 마음속에서 ‘확신’은 자칫 사고의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심리학자 엘런 랭어는 “확신은 잔인한 사고방식”이라고 말하면서, 확신이란 가능성을 외면하고 우리의 정신을 고정시킨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확신에 차 있으면,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유연하게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데 필요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반면, ‘오직 모를 뿐’의 마음은 우리가 겸손해지게 만든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세상에 존재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오직 모를 뿐’의 마음은 우리가 고정된 지식과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확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모른다’는 겸손한 자세를 취할 때, 우리의 삶은 보다 유연해지고,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양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상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오직 모를 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내면의 평화와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결국, ‘오직 모를 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가르침이다. 확신보다는 겸손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을 배운다면, 우리는 보다 넓고 깊은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이로써 우리는 세상과 더 잘 어울려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