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독재자들의 ‘장수’ 집착과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by 정용우

“사라져 가는 것은 아름답다.”

어느 지인의 메시지에서 접한 이 한 문장은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벚꽃이 피고 지는 짧은 생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그 찰나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늦가을, 노년의 친구가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에 인생의 깊이가 녹아드는 것처럼, 모든 것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사랑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조차 두려워하며 ‘영원’을 꿈꾼다. 시간을 지배하고 죽음을 거부하고자 하는 욕망은, 특히 권력의 정점에 선 이들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2025년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전 세계 언론은 시진핑과 푸틴이 나눈 짧은 대화에 주목했다. “생명공학은 발전하고 있다.”, “장기 이식으로 불멸도 가능하다.”, “150세까지 살 수 있다.”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나눈 이 대화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그들의 집착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들의 집념은 진시황이 떠오르게 한다. 불로초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던 그는 결국 죽었고, 그의 집착은 역사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금가루를 섭취한 측천무후, 생리혈을 마신 명나라 황제, 피를 마신 유럽 귀족들 역시 결국 죽음 앞에 무력했다.


21세기에도 이러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프 베이조스는 노화를 역전하는 기술에 투자하고, 일론 머스크는 뇌에 칩을 심어 인간의 진화를 실험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속 브라이언 존슨은 매일 100개가 넘는 영양제를 복용하며 청춘을 되돌리려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만의 삶을 실험하는 개인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욕망이 권력과 결합할 때 발생한다. 시진핑과 푸틴, 그리고 그 곁의 김정은이 상상하는 ‘영생’은 생명 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의 연속성’이며, ‘역사의 중단’이다. 죽음을 피함으로써 자신들의 통치를 무기한 연장하겠다는 선언일 뿐이다.


이런 욕망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벚꽃이 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꽃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기에, 우리는 삶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늙음을 부정하는 독재자는 결국 인간성도 잃는다. 그들의 세계엔 진정한 유대도, 친구도 없다. 그들의 세계에는 진정한 친구도, 따뜻한 유대도 존재할 수 없다. "한평생 옳은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는 말은, 그들에게는 닿지 않는 감성일 것이다. 늘 경계하고 의심해야 하는 삶, 그 끝없는 외로움은 어쩌면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다.


죽음을 거부하는 이들의 탐욕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한다. 만약 인간이 150년을 살 수 있다면, 청춘의 소중함은 옅어지고, 사랑의 절박함은 사라진다. 삶의 진정한 깊이는 ‘끝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고작 꽃병과 약병 사이의 인생.” 어떤 이는 인생을 그렇게 표현했다. 너무 짧아 아쉽고, 너무 길어 버거운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웃는다.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이며 살아간다. 공자는 "술 마실 때는 형제 같은 친구가 천 명 있어도, 급할 때 도와주는 친구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노년의 벗,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는 그런 사람이 어쩌면 인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모든 생명 앞에 공평하다. 우리는 그 숙명을 알기에, 누군가의 이별에 눈물을 흘리고, 꽃이 지는 계절을 애틋해한다. 그러나 과학과 자본, 권력을 총동원해 그 유한성을 거부하려는 자들은 결국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고 만다. 죽음 없는 삶은 끝없는 반복일 뿐이며, 지배자는 그 속에서 끝없는 억압을 지속하게 된다. 그런 세상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다.


역사는 영생을 꿈꾼 이들이 아니라, 유한함을 품위 있게 받아들인 이들을 기억한다. 지는 꽃을 아쉬워하고, 늙어감 속에서 우정을 지키며, 떠나는 이의 등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아는 이들. 그들이 남긴 짧고 깊은 삶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영생’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라진다. 그러나 바로 그 유한함 덕분에, 삶은 매 순간 빛나고, 사랑은 더 절실해진다. 언젠가 끝날 생이기에 오늘의 인연은 더 소중하고, 이별이 예정되어 있기에 우리의 존재는 더욱 간절하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 찰나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고, 인간답게, 서로를 품으며 살아야 한다. 생은 끝을 향해 흐르는 짧은 선율이다. 우리는 그 떨림을 기억할 뿐이다. 그 진동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품격이다.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직 모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