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화단에는 두 그루의 동백나무가 있었다. 하나는 스물다섯 해 남짓 먼저 심은 큰 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몇 해 뒤에 들여온 조금 작은 나무였다. 두 나무는 사계절을 함께 견디며 매년 겨울이면 붉은 꽃을 피워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피어난 동백꽃의 선명한 빛깔은 내 마음의 한 모퉁이까지 따뜻하게 데워 주곤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나무는 나란히 굵어지고, 가지는 짙어졌으며, 꽃망울은 해마다 늘어났다. 동백나무는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으니, 텅 빈 듯한 화단에서 늘 푸른 기운을 유지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나는 두 나무가 마치 형제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먼저 심은 그 큰 동백나무가 조금씩 기력을 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잎의 윤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정도였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꽃의 개수도 줄고 꽃송이도 작아졌다. 작은 동백나무가 해마다 키를 키우며 건강하게 꽃을 피우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애써 보았다. 물을 더 주고, 퇴비도 더 챙겨 뿌려 주었으며, 가지치기도 정성껏 했다. 토양 상태를 의심해 보기도 했고, 병충해를 살피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 하나 뚜렷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큰 동백나무 바로 옆에는 가로등이 하나 서 있었다. 예전에는 불빛이 약한 편이었는데, 몇 해 전 고장이 잦아 새로 교체한 뒤부터 유난히 밝아졌다. 밤마다 그 나무만 환한 불빛에 노출되어 있었고, 작은 동백나무는 전봇대에 가려 빛이 거의 닿지 않았다.
나는 오래 관찰한 끝에 조심스레 추측했다. 혹시 나무도 사람처럼 밤에는 어둠 속에서 쉬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 기력을 잃은 것은 아닐까.
전문가의 견해를 빌려보니, 그 생각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식물 생리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었다. 나무도 낮과 밤의 리듬에 따라 생장과 회복을 조절하는데, 밤의 빛은 그 리듬을 흐트러뜨려 잎과 꽃, 뿌리까지 서서히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밝은 빛이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단순한 이치를, 나는 눈앞의 나무 한 그루를 통해 다시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2~3년 동안 애써 돌봤지만, 결국 큰 동백나무는 다시 기력을 되찾지 못했다. 잎은 기운이 빠지고, 가지는 속이 비어 갔으며, 꽃도 더는 예전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보내 주어야겠다는 판단을 하고, 얼마 전 그 나무를 베어냈다. 톱이 가지를 스칠 때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들었다.
나무를 베어내고 난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만약 그 나무가 밤마다 쉴 수 있었다면, 그토록 기력을 잃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자연스레 우리네 삶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흔히 ‘밝음’을 좋은 것이라 여기며 산다. 눈부시게 빛나는 성취, 끊임없는 활동, 멈추지 않는 소통. 그러나 그 빛이 너무 오래, 너무 강하게 이어지면 마음도 나무처럼 지쳐 간다.
삶에도 어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동백나무가 몸으로 알려 준 셈이다. 어둠 속에서만 들리는 침묵의 소리,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회복되는 마음의 힘, 남에게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차오르는 에너지. 이런 것들은 밝은 시간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빛이 있어야 꽃이 피지만, 어둠이 있어야 꽃이 다시 피어날 힘을 모을 수 있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낮 동안의 활기와 성취가 소중하다면, 밤의 고요와 멈춤 또한 그만큼 소중하다.
그 동백나무가 남기고 간 자리는 아직 텅 비어 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작은 메시지가 남았다.
“잠시 멈추어라. 쉬어라. 어둠 속에 머물라. 그래야 다시 꽃이 핀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다시 작은 동백나무 앞에 선다. 밤이면 조용히 어둠 속에서 잎을 재우고, 아침이면 천천히 햇빛을 받아들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내 삶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삶에는 빛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빛을 온전히 견딜 힘은 어둠에서 길러진다. 그 사실을 알게 해 준 나무 한 그루가 고맙고, 그 나무에서 배운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음이 또한 고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