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나를 찾아오는 은총
아내는 나보다 일곱 살이 젊다. 둘 다 노년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이 나이대에서 일곱 해라는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여전히 삶의 에너지가 넘친다.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집을 거소로 정했지만, 아내의 하루는 진주와 대전, 혹은 그 너머를 맴도는 물결처럼 역동적이다. 손주들을 돌보는 살가운 의무, 트레이닝 센터의 땀방울, 장터의 활기, 그리고 성당에서 교우들과 나누는 따뜻한 정, 지인들과의 맛기행 등이 그 물결을 이룬다.
이렇게 진주와 대전, 혹은 이곳저곳을 바삐 오가던 아내가 어쩌다 시골집에 발이 묶이는 날이면, 뜻밖의 권태(倦怠)가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겨울이라 텃밭 돌볼 일도 없고, 요리나 청소를 해도 금세 끝이 난다. 그러고 나면 TV를 켜거나 휴대전화로 이것저것 둘러보고, ‘매일미사’를 읽다가,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소파에 기대어 빈둥거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지루함이라는 낯선 손님을 홀로 맞이하는 이의 뒷모습이다. "여보, 지루함이 찾아왔네요." 하고 속삭이면, 아내는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이듯 그저 말없이 환한 미소만을 머금는다.
나 역시 이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집에서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터라, 지루함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단골손님이다.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을 땐 단단한 계획과 각오가 있었다. 독서와 글쓰기, 정원 가꾸기와 강둑을 따라 걷는 산책. 처음 일 년은 이 계획의 궤도를 착실히 돌았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꺾이듯, 메니에르씨병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나의 일상을 붙잡았다. 세월은 흘러 이제는 병고의 터널을 서서히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나, 병의 후유증은 여전히 나의 움직임을 예전처럼 활발하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 느려진 속도와 좁아진 공간 속에서, 지루함의 감옥에 갇히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어제의 반복이 오늘이 되고, 오늘의 그림자가 내일로 이어지는 정적인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다. 외로움보다 더 끈질기게 우리에게 달라붙는 것이 바로 이 권태라는 독백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내 삶은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듯 느껴질 때, 우리는 지루함의 모래밭 속에서 생명의 불꽃과 가능성을 조금씩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이 잠식의 느낌이 두려워 쉼 없이 벗어나려 애쓴다.
하지만 이 지루함을 강박적으로 몰아내려 애쓰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가?" 니체가 일찍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역설했듯, 권태에 맞설 철저한 보루를 쌓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청량한 샘물을 결코 맛볼 수 없다. 지루함을 피하려 들 때, 우리는 정작 자기 마음의 미세한 떨림과 깊은 소리를 놓치게 된다.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없고, 자신을 알지 못하면 세상의 기준에 갇혀 허위의 삶을 살다가 공허감이라는 텅 빈 방에 홀로 남겨진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나는, 굳이 이 지루함을 물리치기 위해 숨 가쁘게 노력하고 싶지 않다. 지루함으로부터 캐내야 할 귀한 삶의 지혜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루함은 오히려 세상의 독촉하는 소리를 잠재우고, 우리 자신의 목소리가 맑게 들려올 수 있도록 침묵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드문 은총일 수 있다. 세상의 척도에 쫓기던 마음을 잠시 멀리하고,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조용히 다시 보게 하는 내면의 기준을 세워준다. 이 지루함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우리가 미처 누리지 못한 어떤 내적인 풍요가 싹트고 있음을 문득 알아챌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남은 생을 세상의 유행이 아닌 ‘나다움’이라는 오직 하나의 길로 걸어가는 동력이 될 것이다.
지루함과 기꺼이 친구가 될 줄 아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고독의 깊이가 좋고, 함께 있을 때는 나눔의 기쁨이 좋다. 타인이나 외부의 자극에 의존하지 않고도 마음의 중심이 안정된 사람, 그런 사람은 지루함을 피하는 대신 품에 안아 그 깊이를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다.
결국 우리는 지루함을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파민이 분출되는 자극만을 찾아 끊임없이 표류하게 되고, 그러한 삶은 인간 존재에 진정한 평안을 안겨주지 못한다. 지루함과 벗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니체가 말했던 "자신의 가장 내적인 샘에서 솟아나는 강한 청량제"를 맛보고 내면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