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독하고, 인정머리 없고, 잔혹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 시대에,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사람 하나쯤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우리는 다정한 사람에 대한 갈망을 안고 살아간다. 그 갈망은 단순한 호사나 사치가 아니라, 고단한 삶을 지탱하게 하는 심리적 메아리이며 인간적인 갈증이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그런 이들이 몇 있다. 학창 시절을 함께 지나오거나, 사회에서 만나 교감을 나누며 천천히 마음을 연 사람들. 그들은 내 삶에 깊은 위로가 되어주었고, 살아가는 데 있어 적잖은 촉매 역할을 해주었다. 나에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늘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것이 언제나 따뜻하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아주 가끔, 예기치 않게 그들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단지 나의 기대가 어긋났을 뿐인데도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감정이 남곤 한다. 얼마 전의 일도 그랬다.
나는 이런저런 지병으로 면역력이 심하게 떨어져 여름이면 늘 건강이 악화되곤 했다. 매년 반복되는 문제였다. 수면이 제대로 되지 않아 피로가 누적되고, 입안에서는 염증이 일어나 음식조차 제대로 씹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삶의 의욕조차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어지럼증에, 두통, 난청까지 더 심해지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대화조차 고역이 된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 시작되면 나름의 방법으로 건강을 관리하며 지낸다. 가능한 한 외출을 삼가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날도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있던 날이었다. 절친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에서 친구들이 내려온다고, 고성에 있는 별장에서 1박 2일의 모임이 있다며 나도 오라는 권유였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었기에 나 역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상황은 도무지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거절의 뜻을 조심스럽게 전했지만 친구는 거듭 권유했고, 결국 둘 사이에 짧은 실랑이가 오갔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혼자 생각했다. 다정함도 때로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대의 정이 지나치면, 오히려 그 정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그 순간 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의 모습이 못내 아쉽고 서운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비단 나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친구가 갑작스럽게 찾아왔을 때, 피곤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반가움보다 당혹감이 먼저 드는 경험, 누구나 한두 번은 겪어봤을 것이다. 혹은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초대에 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고 "바쁘단 말이야, 그냥 나와"라는 말로 무심히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다정이라는 이름으로 때때로 상대를 압박한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면 인간관계는 훨씬 덜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잊는다. 친구는 아마도 나를 위해 좋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상황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것이 갈등이 되었다.
며칠 뒤, 그 친구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망설이다 끝내 받지 못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전화가 왔지만, 나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 아마도 곧 또 전화가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분간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다. 수사적인 말들로 상황을 포장하느니, 차라리 침묵을 택하고 싶다. 침묵은 때때로 가장 순하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니까.
인문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이해하려는 의지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관계란 이해 없이 지속될 수 없다. 다정함은 단지 말을 많이 하고 자주 연락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때로는 한 발 물러나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진짜 다정함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이 흐른다. 때로는 말이 상처가 되고, 때로는 침묵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노력만큼은 포기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다정함이란, 때로는 조용히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나도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진심을 담아 건넨 말이지만, 그 진심이 상대의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무심함으로 다가갔던 적은 없었을까.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말과 행동에도 섬세한 성찰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 넣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