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은 세상이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차원과 해석이 가능한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세계는 감각에 맞춰 조정된 하나의 해석일 뿐, 그 너머에는 겹겹이 쌓인 수많은 차원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니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도 단 하나의 시선만 존재할 수 없다. 다양한 각도, 다양한 높이, 다양한 렌즈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그 진짜 모습을 조금씩 그려볼 수 있다.
이제 내 나이 70을 넘겼다. 나이가 들어가며 삶의 끝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끝을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은 욕심과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마음의 눈이 밝아질 가능성도 생긴다. 물론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가 삶의 끝을 자각하며 지혜의 눈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부단한 단련과 수련, 그리고 무엇보다 은혜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얻어진 눈이 바로 심안(心眼), 또는 영안(靈眼)이다.
성경은 ‘눈은 온몸의 등불’이라며 마음의 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눈이 맑고 밝으면 온몸이 빛나고, 눈이 어두우면 온몸이 어두워진다. 육신의 눈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살며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이다. 특히 그 눈이 ‘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끝을 미리 보는 눈은 단지 미래를 예측하는 눈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수록된 단편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에서 인간 욕망의 끝을 그려냈다. 바흠이라는 소작농은 하루 동안 밟은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종일 뛰다 결국 지쳐 쓰러져 끝내 목숨을 잃었다. 만약 그가 마지막에 자신에게 필요한 땅이 고작 누울 자리뿐이라는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그토록 죽을힘을 다해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사람은, 오르기보다 더 중요한 ‘내려가는 삶’을 준비한다. 그 눈이 밝을수록 우리는 욕망과 오만을 이겨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눈은 은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깨어 있음과 단련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은 작은 조짐 하나에서 전체의 흐름을 읽어낸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다, 그 눈이 밝아질수록 우리는 진면목(眞面目), 즉 존재의 본래 모습을 알아보게 된다. 그 눈이 열릴 때 우리는 어떤 선택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으며, 외부의 흔들림에 휘둘리지 않는다. 세상보다 내면을, 이익보다 본질을, 현상보다 진실을 바라보게 된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동생과 함께 서림사를 찾은 후 이런 시를 남겼다.
“이리 보면 고갯마루요, 저리 보면 산봉우리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각기 다르네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 여산의 참모습은 알 길 없나니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네.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제서림벽」 중)
이 시에서 말하듯, 산 속에 있는 이는 산의 전체를 볼 수 없듯이, 삶 속에 있는 우리가 삶의 전체를 조망하기란 쉽지 않다. 시인은 마음이 근원적이고 객관적일 때야 비로소 사물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거시적 시야와 미시적 통찰, 근시와 원시의 균형이 맞아야 세상과 인간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양한 층위에서 사물과 사람을 보아야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보는 눈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고, 결국 삶이 달라진다. 다르게 보면, 다른 사람이 된다.
인도 성자 바바 하리 다스는 “영의 눈이 열리면 자아의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사랑의 숨결이 흐른다.”고 말했다. 그 눈이 열릴 때, 우리는 자신이 곧 타자이고, 타자가 곧 자신임을 깨닫는다. 세상의 경계는 흐려지고, 존재의 근원이 연결된다.
나이가 들면 시력이 흐려진다. 예전처럼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시야는 흐려지지만, 오히려 그 흐릿함 속에서 세상이 더 부드럽게 다가온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소음조차 화음처럼 들린다. 감각이 무뎌진 만큼 마음의 감각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이 들어 늙는다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육안은 흐려지지만, 그 속에서 비로소 심안이 밝아져 삶의 참된 빛을 보게 된다. 이 눈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장 소중한 눈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