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그 찬란한 슬픔의 봄

by 정용우

세상은 온통 벚꽃 천지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연분홍 함박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가지마다 소담하게 매달려 있다. 어제 내린 봄비가 미세먼지를 씻어낸 덕분인지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더없이 달다. 이토록 맑은 날, 벚꽃은 제 생애 가장 화려한 정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벚꽃의 개화 시간은 너무도 짧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이내 꽃들이 떨어져 버린다. 나는 며칠 전 미리 날짜를 잡아 중학교 동창이자 병고(病苦)를 나누며 깊어진 인생 동반자인 내 ‘짝지’ 친구(앞서 소개한 글 ‘병고(病苦)로 깊어진 인생 동반자’ 참조)와 약속을 해두었다. 우리는 반성터미널에서 만나 돼지 수육과 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오늘의 목적지인 의령으로 향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지수면과 의령군의 경계를 흐르는 남강 변의 강둑길이다. 의령군에서 몇 년 전부터 정성스레 가꾸어 온 이 길은 폭이 좁아 작업 차량 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오로지 걷는 자들을 위한 비밀 정원 같은 곳이다. 아직 나무들의 수령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아 고목의 웅장함은 덜하지만,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맞대어 분홍빛 터널을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남쪽 지방이라 그런지 벚꽃은 벌써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람이 한 번 지날 때마다 꽃잎들이 분분히 흩날리며 강둑길을 하얗게 덮었다. 막 피어난 꽃의 생경함이나 절정의 화려함도 좋지만, 나는 이렇듯 낙화하는 벚꽃을 맞으며 걷는 길에 더 마음이 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뿐히 즈려밟히는 꽃잎의 감촉이 낭만적이면서도, 가슴 밑바닥에서는 왠지 모를 애잔함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벚꽃 터널을 한 시간 남짓 걸으며 나는 묘한 상념에 사로잡혔다. 어느덧 내 나이도 고희(古稀)를 넘겼으니, 꽃으로 치자면 지금 내 인생은 어느 지점쯤 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혹시 나 또한 저 꽃잎들처럼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지고 있는 시기는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노년도 저 떨어지는 꽃들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인생의 내리막길을 급하게 달려가는 노년의 가슴속에는 서글픈 질문들이 속절없이 스며든다. 이 아름답고 찬란한 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내년 봄을 기약해도 되는 것일까, 그때도 이 친구와 함께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찬란하기에 더욱 슬픈 봄이고, 그 눈부심을 들여다볼수록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봄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문득 미국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일본의 어느 전장에서 죽어가며 떨어지는 벚꽃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내뱉던 말, “참 죽기 좋은 날”이라던 그 대사다. 그에게 전장은 자신의 신념을 완성하는 장소였고, 낙화는 그 완성의 마침표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무사가 바라본 벚꽃과 달리,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의 전장은 참혹하기만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포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갈등 속에서 들려온 비보가 가슴을 때린다. 미국의 폭격으로 수많은 이란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희생되었다는 소식 말이다. 나는 오늘 이렇게 정다운 친구와 벚꽃 유람을 즐기고 있지만, 지구 반대편 어느 곳에서는 생의 봄날을 강제로 빼앗긴 아이들이 있다.


영화 속 무사는 스스로 택한 신념에 따라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아이들의 죽음에는 어떤 신념도, 명분도 발붙일 곳이 없다. 그저 무의미하고 잔인한 폭력의 결과일 뿐이다. 이 화려한 봄날에 그 비극적인 장면을 떠올리니 봄은 더 이상 아름답기만 한 계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생명력 있게 훅 들어온 봄을 환대하되, 봄의 슬픔을 아는 몸으로서 새로운 봄을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생각하며 함께 마음을 여민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드러워지고 세상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그 시간 안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니 봄은 사계절 중 가장 찬란하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슬픈 계절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봄꽃에 마음 설레는 내 자신이 조금은 밉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타까워하며 우울함의 수렁에 빠져 있을 것까지는 없다. 이왕 벚꽃을 즐기기 위해 친구와 나들이를 나왔으니, 내 마음속 슬픔의 실타래에만 매달리는 것보다는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드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지는 꽃잎이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본다. 내 곁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노년의 동반자,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꽃잎 하나를 툭 털어주며 나는 다시금 다짐한다. 비록 내일 꽃이 지고 우리 인생의 봄이 저물지라도, 오늘 우리에게 허락된 이 찬란한 풍경을 마음껏 사랑하겠노라고. 슬픔조차도 봄이 건네는 선물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우리는 남은 강둑길을 천천히 걸어 나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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