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유수(流水)와 같다’는 말이 있다. 공자(孔子)는 어느 날 냇가를 바라보며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라고 감탄했다. 이처럼 물처럼 흘러가는 세월은 누구도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세월은 그렇게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장자(莊子)는 "사람이 천지에 사는 것은 백구(白駒)가 갈라진 틈새를 지나가는 것(白駒之過隙)과 같다."고 했다. 홀연히 지나가는 세월을 '문틈 사이를 스쳐 가는 흰 망아지'에 비유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피력한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가지 않으면 그것은 더 큰 낭패가 아닌가. 세월은 강물같이 흘러야 한다. 그것이 세월(歲月)이란 글자의 제격이다.
세월을 흘러 보내며 우리는 자연스레 노년의 경계를 맞이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할 때는 공허함이 밀려든다. 마치 가을날 제비가 남긴 빈 둥지를 보는 것처럼… 온기 없는 공간에는 허무함과 무력함이 가득하다. 외로움이 나를 엄습한다. 때로는 불안과 우울감이 함께 찾아올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외로움을 느껴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때 ‘내가 무엇을 했지?’라는 질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처럼 외로움은 삶의 본질을 향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얼마나 저열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세상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고, 사람에 대한 애정도 식어 점점 혼자 있는 생활을 선호하게 된다.” 이 말은 외롭게 혼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얻는다. 외로움 속에서 우리 인간관계는 점차 선택과 집중으로 좁아지고, 우리는 더욱 단순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추구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일지니 어른이 된 우리는 외로움을 스스로의 힘을 찾아가는 계기로, 더 깊은 자아를 만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다는 이야기. 이런 의미에서 외로움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중요한 감정의 하나이자, 인생을 성찰하는 중요한 지점이 될지도 모른다.
어른이란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우리가 동경했던 어른들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본받고자 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잘 맺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속에서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갔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이지만, 고독은 내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이다. 외로움이 고통이라면, 고독은 나와의 깊은 대화에서 나오는 힘이다. 고독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하고, 내 안의 우주와 소통하며, 내 삶의 방향을 찾는다. 외로움은 비어있음에 대한 고민이라면, 고독은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희망이다. 고독은 외로움의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창조적 에너지이기도 하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과 마주하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고,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만의 힘으로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제 나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 그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때로 자신과의 관계도 깨어지는 순간이다. 결국 외로움은 우리가 자아를 찾고, 스스로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우리를 깨우친다.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본이 되기를, 내가 살아온 삶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스스로를 이끌고 나가는 힘을 길러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 과정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다. 스스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꿈꿔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