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넘어, 영혼으로

by 정용우

육체는 우리를 개별적인 존재로 드러나게 한다. 신과의 구별, 타인과의 구별, 이 모든 외형적 차이는 육체의 한계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그 차이 속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동일한 근원을 우리는 ‘영혼’이라 부른다. 영혼은 나와 너, 인간과 신, 모든 존재 안에 하나같이 깃든 어떤 본질이다.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겉으로는 분리되어 있으나 근원적으로는 하나의 불멸적 실재를 나누고 있다. 이로써 영혼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초개인적인 차원을 가진다.


육체는 끊임없이 갈망한다. 편안함을 원하고, 만족을 추구하며,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그러나 영혼은 조용히, 그리고 깊게 살아 있다. 인간은 이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 욕망을 좇아가다가도 허무를 느끼고, 내면의 깊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다가도 세속의 소음에 길을 잃는다. 하지만 진정한 ‘나’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 우리 삶의 본질은 육체의 그림자가 아니라 영혼의 실루엣에 있다. 영혼을 앙양시켜야 하며, 이를 세속의 추악함에서 지켜야 한다. 영혼이 육체에 압도당하면, 삶은 그저 외적인 쾌락의 유예에 머물 뿐, 지속적인 평온은 끝내 도달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흔히 ‘영혼을 구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과연 영혼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일까? 진실은 그 반대다. 영혼은 멸망할 수 없는 것이다. 구할 필요가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며, 영혼은 존재 자체이므로 파괴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그것을 정화하는 것이다. 혼탁함, 오염, 불균형에서 벗어나게 하여, 보다 깊고 자유로운 빛을 투영하게 하는 것. 톨스토이가 말했듯 영혼은 유리요, 신은 그 유리를 통과하는 빛이다.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은 자신을 통해 신의 빛을 세계에 투사한다. 따라서 진정한 신의 형상은 외적인 권위나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화된 영혼 속에 있다.


누구나 자기 안에 두 삶이 있음을 안다. 하나는 육체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삶이다. 육체는 절정을 향해 달리다 서서히 쇠퇴하고 죽음에 이르지만, 영혼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깊어지며, 결국 죽음조차 넘어서려 한다. 만약 우리가 육체의 삶에만 매달린다면, 우리 인생은 그저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의 삶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영혼을 위해 살아간다면, 삶은 내면의 충만함으로 채워지고, 죽음조차도 새로운 삶의 문턱이 된다.


육체는 끊임없이 만족할 줄 모른다. 명예나 부, 지위 같은 외적 성취를 손에 쥐려 하나, 결국 그 끝은 허무로 귀결된다. 이런 것들은 삶을 궁극적으로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오히려 우리 안의 영혼이 바라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겸손, 자비, 박애—이러한 가치들은 외적인 천국을 필요 없게 만든다. 천국이란 결국 영혼 속에서 도래하는 것이며, 그것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육체는 언젠가 반드시 사라질 것이며, 그에 기반한 모든 행복은 결국 불안을 동반하게 된다. 마치 얼음 위에 지은 집처럼, 언젠가는 녹아버릴 터전 위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멸하는 육체의 삶을 내려놓고, 불멸하는 영혼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삶의 터전을 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 두어야 한다. 그 기반이 바로 영혼이다. 육체의 욕망에 휘둘리는 삶은 잠시의 즐거움을 줄 수는 있으나, 결국 공허와 피로, 그리고 후회를 남긴다. 어떤 이는 맛있는 음식에, 어떤 이는 권력에, 어떤 이는 세속의 영예에 인생을 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뒤에는 마모된 정신, 고갈된 감정, 그리고 방향을 잃은 존재만이 남는다. 오직 영혼의 성장만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 행복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은 외적인 소유가 아니라 내적인 성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유의 끝에 우리는 성철 스님의 말에 다시 귀 기울이게 된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그가 말하는 ‘자기’는 곧 영혼이다. 영혼은 이미 본래 구원되어 있으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 실재다. 우리는 이미 부처이며, 이미 충만한 존재다. 겉으로는 헐벗고 가난할지라도, 우리의 본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하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상대의 본질을 모욕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내면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이다. 우리 안의 진리는 결코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는 것은 마치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 같다. 진리는 영혼 속에 이미 완비되어 있다. 순금은 항상 존재했으나, 욕망이 그 빛을 가려 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의 영혼 역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제는 자기라는 이 맑고 큰 바다를 되찾을 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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