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신발이 열어줄 새로운 길

by 정용우

시골에 살고 있는 저에게 딸이 가끔 전화를 걸어옵니다. 대도시에 살며 바쁘게 아이를 키우는 딸은 유치원 다니는 외손자가 요즘 엉뚱한 행동을 자주 한다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예를 들면, 신발을 양쪽 다르게 신는다든지, 색깔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고집스럽게 입는다든지 하는 일들입니다.


그럴 때면 저는 조용히 웃으며 딸에게 말합니다.

“괜찮아. 그냥 놔둬라. 그것도 일종의 창의성이야. 저런 행위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아무도 몰라.”


딸은 한숨을 쉬면서도, 제 말에 조금은 위로를 받는 듯합니다. 저는 외손자의 엉뚱한 행동 속에서 아이다운 자유로움과 살아 있는 상상력을 봅니다.


우리는 자녀가 남들처럼 자라주기를 바라고,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 주기를 바랍니다. 남들이 다니는 학교, 남들이 선호하는 학과, 남들이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직장을 향해 아이를 이끌어갑니다. 그래야 부모인 우리가 잠시나마 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획일적인 기준에 맞추어 얻어낸 ‘덜 불안한 삶’이 아이의 진정한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과 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창의성은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일상에서도, 학교와 직장에서도, 그리고 사회 전체에서도 새로운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과거의 방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그것이 곧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저는 그것이 ‘허용’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조금 엉뚱한 말을 하더라도 웃어주고, 독특한 그림을 그리더라도 감탄해 주며,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해도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 그 너른 마음이 아이에게는 자신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부모의 허용은 아이에게 용기와 자율성을 심어줍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자기만의 색깔과 길을 찾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줄 세우기에 익숙합니다. ‘서열 높은’ 대학, ‘인기 있는’ 전공, ‘안정적인’ 직장을 기준으로 아이의 미래를 설계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과 개성은 일찌감치 제한을 받게 됩니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보화 사회, 융복합 과학기술 시대에는 오히려 다양한 시도와 독창적인 사고가 더욱 필요합니다. 이제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행위에서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 말 그대로 전방위적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남들과 똑같기를 바라는 사회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딸과의 대화를 통해 저는 다시 한 번 부모로서의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됩니다. 아이가 보이는 ‘다름’을 이유 없이 걱정하거나,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우리 아이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했던 순간은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이야말로 창의적인 교육의 출발점이 아닐까요.


오늘도 저는 딸에게 말합니다.

“지금은 엉뚱해 보여도, 그 안에 특별한 것이 숨어 있을 수 있어. 조금 멀리서, 기다려 보면서 지켜봐.”


저는 아이가 스스로를 믿고, 자기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합니다.

그 엉뚱함 속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믿으며, 창의성을 위하여 오늘도 아이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그 다름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조용히 기도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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