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사는 삶

by 정용우

가을이 익어갑니다.

서늘한 바람이 아침 창틈을 스치고, 나뭇잎은 햇살 한 줌에도 스르르 떨며 떨어집니다. 어느덧 길가에 수북이 쌓인 낙엽처럼, 자연은 말없이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우리 마음도 조용히 흔들리며, 이 계절이 건네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가을은 가슴으로 살아야 하는 계절입니다.

풍요의 끝자락에서 문득 찾아오는 쓸쓸함, 깊어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는 고요한 감정들. 바쁘게만 달려온 삶의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되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가’, ‘내 마음은 어떤 빛깔인가’라고.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각자의 목소리만 커지고, 상대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해보다는 오해가, 포용보다는 주장과 분노가 앞섭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이분법이 사람들 사이의 다리를 무너뜨리고, 말들이 칼처럼 서로를 할퀴고 지나갑니다.


우리가 조금만 멈출 수 있다면, 조금만 비워낼 수 있다면 어쩌면 세상은 지금보다 덜 거칠고, 조금 더 따뜻할지도 모릅니다.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는 삶. 조금 손해 보아도 괜찮고, 조금 늦더라도 함께 가는 길을 택하는 그런 삶이 필요합니다.


내 안에 ‘나’만 가득 차 있으면, 누군가 쉴 자리가 없습니다.

자존심, 집착, 욕심, 판단, 교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면, 타인의 슬픔은 그 어디에도 머물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작지만 고요한 빈자리 하나쯤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고백할 수 있도록, 울 수 있도록.


불교에서는 ‘인드라망(因陀羅網)’을 말합니다.

하늘에 걸린 거대한 그물, 그물의 마디마다 박힌 구슬은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울림을 이룹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너로 인해 존재하고, 너는 나로 인해 존재합니다. 따로인 듯 보이지만 우리는 결국 하나의 그물망 안에 연결된 존재들입니다.


가끔은 말하지 않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소리 내어 말하는 대신, 귀 기울이고 느끼는 침묵의 기도. 내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내가 정말로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내는 시간. 그 시간이 우리를 근원으로 이끌고,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게 할 것입니다.


해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경청했으며, 얼마나 공감했는가. 내 손을 잡아준 사람에게 나는 어떤 울림으로 남았을까. 바람은 스치고, 나뭇잎은 떨어지고, 그 모든 찰나의 순간들이 다시 삶의 의미로 되돌아옵니다.


지금, 가을입니다.


그러나 이 글의 마음은 계절을 넘어서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매 순간 가슴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머리보다 느림으로, 말보다 침묵으로, 경쟁보다 공존으로. 그렇게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낮게, 서로에게 울림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