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고요한 산사의 선방이나, 깊은 산중의 암자에서 좌선을 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명상이 꼭 그러한 형식 안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삶을 돌아보는 일이 곧 명상이라면, 일상의 어느 자리에서든 그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때때로 경남 사천에 위치한 다솔사를 찾습니다.
제가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어느 절보다도 사찰 전체가 깔끔하게 정리·정돈되어 있다는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경내를 둘러보면 공간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어 있는 듯하고, 무엇보다도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는 차밭이 유독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절집의 단정한 분위기와 더불어, 수행자의 손길이 곳곳에 스며 있는 이 공간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정리되게 만듭니다. 조용히 그 길을 걷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속의 불필요한 생각들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다솔사는 저에게 ‘수행자의 집’이 무엇인지, 말없이 일러주는 곳입니다.
정원일을 하다 잠시 허리를 펼칠 때면, 저는 이 말을 자주 아내에게도 이야기하곤 합니다. 절집의 고요한 정갈함을 닮은 그 한마디가 제 삶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이 말이 마음속에 떠오를 때면, 나도 내 집의 정원만큼은 수행자의 마음으로 가꾸어야겠다는 다짐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 단정함과 고요함은 어느새 제 일상으로 번져옵니다. 저희 집에는 제법 넓은 정원이 있습니다. 300평 남짓한 잔디밭과 화단이 있고, 계절마다 꽃이 피고 풀이 자랍니다.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조금만 손을 놓으면 잡초가 자라고 순식간에 어지러워집니다. 그럴 때면 저는 다솔사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원 가꾸는 도구를 들고 밖으로 나섭니다.
잡초를 뽑고 나뭇가지를 다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손에 흙을 묻히며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처음에는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그 일에 깊숙이 몰입하게 됩니다. 몰입이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크고, 그 기쁨은 제 안의 고요함으로 이어집니다.
이때마다 저는 한 가지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예전에 지인에게서 들은 미켈란젤로의 젊은 시절에 관한 일화입니다.
이탈리아의 한 영주의 저택에서 정원사로 일하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새벽이면 정원을 돌보며, 잡초를 뽑고 나무의 형태를 가꾸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영주가 어느 날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매일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는가? 그렇다고 급여가 오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때 정원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이 즐겁습니다. 제 손으로 가꾼 정원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 말에 감동한 영주는 그가 더 큰 기쁨 속에서 자기 삶을 펼쳐갈 수 있도록 미술 공부를 지원하였고, 훗날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보상이나 성과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 일을 의미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진심을 다해 몰입하면, 그 자체로 마음에 큰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 기쁨은 삶을 흔들림 없이 지탱해 주는 힘이 됩니다.
저에게 정원을 가꾸는 일은 곧 제 마음을 가꾸는 일과 같습니다. 풀을 뽑고 흙을 다지고, 가지를 정리하는 동안 저는 저의 하루를, 저의 생각을 차분히 정돈합니다. 어느 하나 대충 넘기지 않고 성의 있게 다루는 그 시간이, 제 삶의 혼란을 다스리고 제 마음을 밝히는 시간이 됩니다.
삶이 어지러울 때면 저는 다시 정원으로 향합니다. 바람을 느끼고 햇빛을 맞으며, 묵묵히 손을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면 다솔사에서 느꼈던 고요했던 풍경이 문득 떠오르고, 제 안에도 그 정갈한 기운이 다시 피어오릅니다.
조용한 손길 하나, 작은 정성 하나가 결국 제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단정한 결이 또 누군가의 마음에도 조용한 울림이 되어 닿기를, 저는 오늘도 바라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