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우리에게 대자연, 인간, 그리고 모든 사물이라는 세 스승이 있으며 그중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라고 역설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삶의 순환과 섭리, 즉 생성과 소멸의 이치를 묵묵히 보여주며 가장 근원적인 깨달음을 선사한다. 또한 어떤 인위적인 의도나 치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며, 꾸밈없는 당당한 존재 방식을 가르쳐준다.
문득 기대도 설렘도 없는 삶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 나는 무조건 문밖으로 나간다. 데이트 비용을 걱정할 필요도, 누군가의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는 가장 멋진 연인이 바로 자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곁에 두고 걷는 강둑길 산책을 즐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수많은 들풀과 들꽃들을 만난다. 특히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누가 가꾸지 않아도 지천으로 피어나는 구절초(九折草)가 반긴다.
사람들이 쓸모없다 여겨 가꾸지 않는 것들을 ‘잡풀’이라 부르며 외면하지만, 사실 그들의 생명력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척박한 땅에서, 온갖 악조건 속에서 때가 되면 기어코 꽃을 피우고 또 피우는 그 끈질긴 생명력은 거의 불가사의한 수준이다. 이는 마치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역사를 이어온 민초(民草)의 삶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피어나며, 그 자체로 세상의 숨결이 된다.
이러한 들꽃의 미덕에 대해 백범 김구 선생은 그의 『백범일지』에 깊은 공감을 표했다. "나는 높은 산의 소나무나 잣나무가 되기보다 수많은 들풀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들풀은 그 빛깔이 각기 다르고 그 향기도 서로 다르지만 봄바람이 불면 모두 함께 웃는다. 나는 이같이 평범함과 조화를 사랑한다." 평범한 들풀을 통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저마다 제 일에 힘써 그 나름의 향기를 내는 것이 바로 하늘과 땅의 덕이라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의 중심을 다투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며 서로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삶의 가치야말로 들꽃이 가진 가장 고귀한 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서도 문득 완벽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완벽한데,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때로는 누구의 눈에 띄지도 않은 채 화려하게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네.” 어느 철학자의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나 역시 아름답지만 눈에 띄지 못하는 들꽃을 안타까워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꽃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되묻는 듯했다. “바보야. 내가 남에게 보이려고 꽃을 피우겠니? 다른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야. 내 마음에 들기 때문에 꽃이 피는 거야. 나의 즐거움과 기쁨은 꽃이 피는 데 있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있어.”
『쇼펜하우어의 슬기로운 철학수업』(김미조 편역)에 나오는 이 들꽃의 대답은 우리의 삶의 근본을 뒤흔든다. 우리는 늘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을 의식하며 살아가지만, 들꽃은 오직 ‘나’라는 생명의 내적 명령에 따라 피어난다. 그것은 순전히 자기 존재에 대한 기쁨이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는 당당함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존재로 당당히 서 있는 들꽃의 기운 덕분에, 나 또한 평온을 얻고 어지러운 일상을 내려놓을 수 있다.
세상에는 활짝 피어 주목받는 꽃도 있고, 잠깐 피다 지는 꽃도 있다. 길거리에 핀 수많은 들꽃의 이름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과 환경을 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그 들풀들과 다름없이 '힘겨우면 하늘을 바라보다가, 물들다가, 바람에 살을 부비며‘(이근배, ‘들꽃’)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우리의 삶 또한 모두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이다.
시인 나태주가 노래했듯이, 이름 모르는 풀꽃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자주 보아야 사랑스럽다’. 전혀 손대지 않은 것의 가치, 인위적이지 않은 것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 자유로운 한 생명을,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치우친 생각 없이 믿고 아끼고 돌보고 사랑했으면 한다.
유난히 내 눈에 들어오는 이 가을의 들꽃. '들국화'라는 어여쁜 이름을 두고 어쩌다 '구절초(九節草)'라는 멋없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홉 마디마다 한 생을 견디며 피어나는 강인함과 절개의 뜻이 그 이름에 담겨 있을 것이다. 그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이야말로 진득한 아름다움으로 변한다. 그래서 오늘도 강둑길을 걷는 나에게 가장 깊은 평화와 성찰을 안겨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