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해마다 비슷한 얼굴로 찾아오지만, 그 계절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같은 바람, 같은 하늘, 같은 단풍이라도 마음의 그릇이 달라지면 계절의 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고, 또 때로는 걸음을 멈추게 하며 오래 바라보게 한다. 어쩌면 그런 ‘멈춤’의 순간이야말로 삶이 우리 앞에 조용히 건네는 의미의 신호인지 모른다.
며칠 전 나의 지인 중 한 분이신 하성규 교수님께서 카카오톡으로 짧은 시 한 편을 보내주셨다. 제목은 <가을에>. 가을 오후의 빛처럼 은근하고도 선명한 울림을 지닌 시였다. 시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가을 산에서,
단풍잎 하나를 손에 쥐며
나는 다시 젊어진다.
그 붉음 속에
내 지난날의 꿈이 있고,
다가올 날의 열정이 있다.
그 한 점의 불빛이
나를 또 한 계절 앞으로 이끌어 간다.
많은 이들에게 단풍은 그저 ‘계절이 지나간다’는 신호일 뿐이다. 잎이 물들고 떨어져 흩어지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단풍은 익숙한 풍경이 되어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바라본 단풍은 지나가는 계절의 흔적이 아니라, ‘새로운 계절로 이끄는 불빛’이었다. 같은 단풍잎을 보면서도 누군가는 끝을, 누군가는 시작을 읽는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시선이 다르고, 마음의 준비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의미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며, 발견은 언제나 바라봄에서 시작된다. 단풍잎을 손에 쥐고 젊어진다고 느끼는 마음, 그 붉음 속에서 지난 꿈과 다가올 열정을 동시에 꺼내 드는 마음. 이러한 태도야말로 삶을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텍스트로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장면을 지나치며, 그중 대부분은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순간—단풍잎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저물어가는 햇빛의 기울기,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가을 냄새—이 우리를 멈추게 할 때가 있다. 그 잠깐의 멈춤이 마음속 어디인지 모를 지점을 건드리며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게 한다.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의미는 늘 이렇게 조용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멈추어 바라보는 일,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떨림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그 떨림이 이끄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 보는 일.
우리는 이 세 가지를 통해 삶의 의무를 수행한다. 이 의무는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부과되는 책임도 아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지우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근본적인 책임이다.
바로, 삶을 사랑하려는 의무이다.
단풍잎은 어느 순간 불꽃처럼 타오르다 이내 바스라지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계절을 환하게 밝힌다. 인간의 삶도 어쩌면 그러하다. 언젠가 우리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겠지만, 그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작은 순간들을 의미로 바꾸어 쌓아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미의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삶을 완성하는 일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가을의 빛은 잠시 머물다 떠나겠지만, 그 빛이 남긴 울림을 붙들어 또 한 계절 앞으로 나아가는 일—그것이 바로 우리가 건져 올려야 할 삶의 의무다.
단풍잎 하나에서 삶을 사랑하려는 의무를 건져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또 한 계절을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