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각하(照顧脚下), 외손자의 신발 정리에서 배우다

by 정용우


며칠 전 아내가 대전 딸네 집에 손주들을 돌봐주러 갔다. 아이 엄마는 논문 준비를 위해 며칠간 현장 답사를 다녀와야 했고, 그 빈자리를 대신해 할머니가 나선 것이다. 아내는 딸과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서슴없이 나선다. 그저 '다녀올게' 한마디만 남겨놓고 떠나는 모습이 늘 그렇듯 자연스럽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아내가 카카오톡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현관 바닥에 놓인 가족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었고, 그 옆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사진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 이 녀석도 누나처럼 착한 일 해서 돈 벌고 싶답니다. 신발을 정리하면 엄마가 500원 준다네요. 친구들이랑 ‘뽑기’ 하고 싶대요.”


순간, 얼마 전 진주 손주들이 뽑기 이야기로 들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요즘 아이들에게 ‘뽑기’는 어른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아주 매력적인 놀이인 모양이다. ‘사행심 조장’ 운운하기 전에, 아이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놀이고 작은 성취의 상징이겠지. 그러나 그보다 내가 눈여겨본 것은 ‘착한 일을 하면 500원’이라는 규칙이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다는 이 단순한 행동이, 아이들에게는 ‘착한 일’의 첫 단계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신발을 신거나 벗고 정리할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인다. 이 단순한 동작 안에는 묘하게도 마음을 내려놓는 기미가 숨어 있다. 몸이 구부러질 때 마음도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아래를 바라보는 순간 내가 선 자리와 발아래의 현실을 잠시나마 자각하게 된다.


손자의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문득 오래전에 절집에서 보았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조고각하(照顧脚下)’. 선방의 신발장 위나 출입문 근처에 어김없이 붙어 있던 글자. 부처님 말씀처럼 들리지만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이었다.


처음 그 글귀를 보았을 때 나는 조금 뜨끔했었다. ‘발아래를 잘 살피라’는 말이 그저 신발을 가지런히 놓으라는 뜻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 속에는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신발을 제대로 벗고 신는 일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행위 하나에도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도(道)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발아래를 살피려면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아무리 똑똑하고 재주가 많고 경험이 풍부해도, 아래를 본다는 행동만은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다. 수행자의 기본이 하심(下心)이라면, 그 시작은 바로 이 작은 굽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는 손자가 신발을 가지런히 놓은 그 모습을 보며, 아이가 아직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이런 작은 경험이 쌓여 언젠가 한 사람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이루어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착한 일’이라 부르는 작은 습관 하나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조용한 힘으로 남는 법이다. 아이에게는 500원의 보상이 목적일지 모르지만, 그 습관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러운 태도’라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 줄 것이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소소한 일에 고개 숙이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다. 경험이 쌓였다는 이유로, 나름대로 산 인생이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는 교만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조고각하라는 말은 수행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 같은 평범한 노년의 삶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손자가 가지런히 놓아둔 작은 신발과 그 위로 기울어진 그 아이의 세심한 시선을 떠올려 본다. 그 모습이야말로 하심의 첫걸음, 조고각하의 실제 실천이 아닐까. 우리는 나이를 먹으며 많은 것을 잊지만, 이렇게 아이들을 보며 다시 배우기도 한다.


오늘 아내가 보내온 사진 한 장은 그저 귀여운 장면 이상의 의미였다. 어쩌면 삶을 단정하게 만드는 힘은 거창한 가르침보다, 이렇게 손끝으로 익히는 작은 습관에 숨어 있는 것이리라. 아이가 신발을 가지런히 하듯, 나도 내 발아래를 한번 더 살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숙여 내 자리를 보고, 마음을 낮추어 내 삶을 돌보는 일. 그 단순한 행동 속에서 다시 한 번 나는 배운다.


도는 멀리 있지 않다. 늘 내 발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지금은 500원을 위해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손자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며 이 작은 습관 속에 깃든 조고각하의 뜻을 스스로 체득하길. 그리하여 ‘착한 일 하나’의 경험이 일상을 밝히는 마음가짐으로 넓어지고, 결국은 자신만의 삶을 단정하게 가꾸는 힘으로 자라나기를 조용히 기도해 본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단풍, 멈춤, 그리고 삶을 사랑할 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