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어린 시절의 집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우리 집은 시골에서는 제법 큰 대문을 가진 집이었다. 길에서 사랑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절의 일주문처럼 기와지붕이 얹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걸인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머니는 늘 사랑채 손님 대접에 분주하셨고, 할머니는 그 대문 밑 덕석 위의 걸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느라 바쁘셨다.
그 시절 내 눈에 걸인은 낯설고도 신비한 존재였다. 대부분은 밥을 받아 먹고는 “고맙습니다” 한마디 남기고 떠났지만, 어떤 이들은 조금 달랐다. 식사 후 마당을 빗자루로 쓸어놓고 가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나를 불러 함께 꽃을 심었다. 그는 낡은 행낭에서 뿌리 몇 개를 꺼내 내게 건네며 “이걸 저기다 심어보자”고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칸나의 뿌리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꽃이 자라나는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보며 아침마다 마당을 쓸었다.
마당이 깨끗이 쓸려 있을 때마다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셨다. 경상도 사나이답게 칭찬에 인색하셨던 분이었지만, 그날따라 “너는 나중에 좋은 각시 얻겠다”고 하셨고, 칸나가 활짝 피었을 때는 “너는 학교 선생님 하면 잘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짧은 한마디가 어린 나에게는 세상의 모든 격려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어 매일 빗자루를 들었고, 마당에서 골목길까지 쓸었다. 그리고 걸인이 심어준 칸나의 뿌리를 옮겨 심고 돌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칸나꽃은 점점 늘어나 대문에서 안채로 이어지는 붉은 화단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정말로 선생이 되었고, 예쁜 아내도 얻었다. 언젠가 문득 깨달았다. 아버지의 말씀이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잡아준 예언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마당을 쓸면 좋은 각시 얻는다”, “꽃을 잘 키우면 선생님이 될 거다.” 그 말 속에는 근면과 정성,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었다. 아버지는 말보다 행동으로, 꾸중보다 믿음으로 나를 가르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쉰을 채 넘기지 못하고 아들딸 다섯을 남겨둔 채 눈을 감으셨다. 그때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다.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오셨는지, 왜 늘 말없이 새벽길을 나서셨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야 비로소, 나 또한 한 집의 아버지가 되어 보니 그 침묵 속에 담긴 무게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대체로 말이 적다. 사랑한다는 표현 대신 묵묵히 일터로 나가고, 가족을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보여주신다. 그 손길이 닿은 집안 곳곳에는 그분들의 존재가 살아 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오래도록 그 부재를 실감하지 못했다. 바쁜 세월 속에서 문득문득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마당 좀 쓸어라.” 그 말은 단순한 청소의 지시가 아니라, 마음을 닦으라는 뜻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세상살이에 먼지가 쌓여도, 마음의 마당을 깨끗이 쓸면 다시 꽃이 핀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도 병들고, 뇌졸중과 약한 치매를 앓으셨다.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마루가 높았던 기와집을 허물고 현대식 집을 새로 지었다. 마당에는 잔디를 깔고 칸나 대신 튤립으로 화단을 장식했다. 집은 변했지만, 나에게 잔디 깎는 일은 여전히 마당을 쓸고 정리하는 행위였고, 튤립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어린 시절 칸나꽃을 돌보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젠 상강이 지나 더 이상 잔디와 풀이 자라지 않지만, 다시 한 번 마당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다. 그래 놓아야 겨울 내내 잘 정리된 노란 잔디밭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마당을 깨끗이 쓸어놓겠다는 기분으로 올해 마지막 잔디를 깎는 것이다.
잔디 깎기 기계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방향을 조절하며, 한 줄씩 잔디밭을 지나간다. 기계가 지나간 자리마다 잔디는 가지런히 정리되어간다. 잘 정돈된 잔디밭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던 기억이 조용히 떠오르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땅과 풀의 감촉, 기계가 남긴 깔끔한 흔적 속에서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과 길을 닦던 그분의 마음이 살아 숨쉰다.
잔디 위에 드리운 가을빛 아래, 나는 아버지의 침묵이 곧 가르침이었던 그 마음의 마당을 오늘 다시 깨끗이 쓸어놓는다. 이 묵묵한 행위가 내 삶이 되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아버지, 저 이제 당신 말씀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