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희망으로 가꾼 나의 명상 뜰
우리 집 마당에 푸른 잔디를 심은 것은 스물다섯 해 전의 일이다.
그때는 병고와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 인생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시절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오직 건강을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구옥을 허물어 새집을 짓고 곧 이 백여 평의 땅에 잔디를 깔았다.
그 잔디밭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께 푸른 안식을 드리고자 한 마음이자, 어둠 속에서 스스로에게 심어준 ‘푸른 희망의 불씨’였다.
그래서 잔디밭 가꾸기는 절박한 소망을 보듬는 행위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잔디밭은 이제 이 동네의 ‘명물’이 되었다.
아내가 우리 집 주소에 ‘(잔디밭집)’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만큼, 택배 기사님들조차 주소 대신 잔디밭집을 찾아올 정도다.
초창기에는 이웃들도 푸른 마당을 꿈꾸며 잔디를 심었지만, 농촌에서 잔디를 관리한다는 것은 농사만큼이나 고된 일이었다.
결국 이웃들의 마당은 하나둘씩 시멘트의 회색빛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텃밭 외에는 다른 농사를 짓지 않았기에, 잔디밭 관리에 온전히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오늘의 이 잔디밭을 ‘명물’로 만들어 준 것이다.
희망을 붙들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잔디밭 관리는 이제 나에게 ‘즐거움의 샘터’가 되었다.
그 즐거움은 완성된 결과물을 보는 기쁨보다, 관리의 과정 속에서 더 깊이 느껴진다.
특히 잔디 사이로 비집고 올라온 잡풀을 하나하나 뽑을 때면, 나는 묵상에 잠긴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마음의 번뇌와 잡념이 함께 뽑혀 나가는 듯하다.
잔디밭은 몸을 움직여 마음을 닦는 수행의 도장이요, 살아 있는 명상의 뜰이 된 셈이다.
잘 정리된 잔디밭을 바라보는 일은 그 모든 수고가 응축된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 땅에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이어질 즐거움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지금도 올해 마지막으로 깎은 잔디밭을 거실 창 너머로 바라보며 실내 자전거를 탄다.
푸른 카펫처럼 단정해진 잔디밭이 내게 말을 건넨다.
수많은 땀과 노동, 그리고 희망의 세월이 스며든 그 자리에서 나는 또 한 번 중얼거린다.
“역시 잔디밭은 깎고 난 뒤, 느끼는 그 맛, 그 기분이야.”
그 감정은 단순한 성취감이 아니다.
삶을 정돈하고 치유하며 스스로에게 부여한, 조용한 안식의 감각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