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낮잠, 엄마는 공부
24년에 여러가지 이유로 방송대 통계데이터과학과 학생이 되었다. 작년 하반기, 즉, 2학기 후기는 브런치에 남기지 못했지만 어쨌든 수학했다. 당시에 산후조리원에서도 강의를 듣고 과제를 했던 나 ㅋㅋㅋ 그만큼 공들인 과제가 만점을 받았을 때 기쁨은 분명 잔잔함 그 이상이다. (방송대에 입학한 이유는 지난 브런치에 있습니다.)
마음 먹고 시작한 공부이기에 책상 앞에 엉덩이 붙이고 앉는 의지는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2학기와 동일하게 국가장학금 최소 기준인 12학점, 4개 과목만 수강신청했지만 지난 2학기 경험상 4개 과목이어도 육아, 집안일 등을 빼면 제대로 '공부하는'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음(!)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학기는 강의가 열리는(전 강의 중 80% 이상 들어야 형성평가 20점 만점을 받을 수 있다) 2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둘째는 백일을 갓 지난 3개월차. 모유수유하며 가정 보육도 하며 4개 과목이나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많은 의심이 들었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었다.
사실, 3월 초에 SQLD라는 자격증 시험을 신청해두었고, 2월 초부터 간간히 책을 보기 시작했다. SQL이라는 문법 자체는 재밌었지만, 업무 대비용이었기에 SQLD라는 시험 준비 자체는 재미가 없었다. 책을 펴놓고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몇 문장 보다 그만 두는 안일함. 수유하면서도 책을 보고 있잖아.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 자의식 밑에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녀석이 있던 탓인지 '아 이렇게 보면 안될 것 같은데' 하면서도 공부에 불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시험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충 한 공부는 역시 화를 불렀다. 마지막에 진짜 중요한 명령어 2개 용법을 헷갈렸고, 수학의 기본 질서를 무시하듯 가장 먼저 계산해야 하는 연산자에 괄호 연산자를 탈락시켜버렸다.
결과는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 두 번 연속으로 자격증 시험 1트에 합격을 이어갔기에 기대 아닌 기대를 했지만, 나를 마주한 건 불.합.격 세글자였다. 위에서 말한 그 한 문제들을 아까워하면서도,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이렇게 공부했는데도 붙었다면? 내 공부 방법에 문제가 없고, 앞으로 내가 볼 많은 시험들의 '최선의 기준'이 내려갔을 것이며,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성찰하지 못했을 테니까. 시험 보기 전부터 '이렇게 공부해도 되나? 안될 것 같은데?'란 생각이었는데,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3n 살면서 쌓아온 공부 빅데이터가 나 스스로에게 정답을 알려주고 있던 것이다.
방송대 생활에 스터디 이야기가 항상 나오지만, 실제로 해봐야 그 맛을 안다. 1학기 때 스터디를 한 과목이 A+을 받았기도 했고, 3학기에는 더 공부할 시간이 없을 것 것 같아 회귀모형 스터디를 했다. 회귀모형은 통계학을 한다면 반드시 해야하는 과목으로 손꼽히는데, 그만큼 최상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나마 수학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R로 하는 실전 회귀모형에 가깝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매주 수요일 밤 9시 반부터 11시까지 하는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아기들이 완벽히 자주는 게 아니면 9시 반을 맞추기도 꽤 힘들었다. 둘이 다 늦게 잠이 든 날은 둘을 재우면서 에어팟을 꼽고 스터디원들의 발표를 들었다. 스터디 내내 책을 열심히 봤던 덕분에 기말 시험 직전 큰 효과를 봤다. 예제가 어디에 나오는지 다 알 정도로 꼼꼼히 본 듯하다! 사조사 1급 필기 공부 이후 가장 열심히 본 책일 것이다.
사실 3학기의 또 다른 원동력은 다른 데 있었다. 3월 초, 받아본 방송대 신문에서 만난 안 교수님의 칼럼! 교수님들은 왠지 모르게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 같은데, 칼럼에는 교수님이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겪은 경력단절과 그 이후가 솔직하게 담겨있었다. 박사수료 후 6년 안에 학위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기한 연장에 대한 조항은 없어 학내 인권센터의 도움을 얻어 '자녀 1명당 2년 연장'이라는 학칙 개정을 이끌었다는 이야기. 그 이후 방송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우여곡절. 참으로 솔직하고 어쩌면 뼈아픈 이야기에 공감과 힘을 얻어 공부하는 내내 연습장에 껴두었다.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 지라 간혹 내 예상보다 둘째가 일찍 깨면 "왜 이렇게 빨리 깼어~"하며 엉덩이를 두드릴 때가 있었다. 공부해야 하는 양을 못하는 데에서 온 나의 심기불편함. 그렇지만 이 칼럼을 생각하며 이내 마음을 고쳐먹곤 했다. 아기의 잠 시간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볼 수 있을 때 집중력 있게 보자.이런 생각으로 마인트컨트롤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강의는 설거지하면서 에어팟 꽂고 듣고, 복습은 아기 낮잠 시간에 하고, 과제는 새벽녘까지 하고. 4과목이라도 보이지 않는 물질을 하는 오리처럼 고군분투했던 3학기도 6월 중순 기말고사로 끝이 났다.
그 결과는.. 올 A!!! 2개 A+과 2개 A0라는 만족스러운 성적으로 마무리.. 따흐흑,, 특히, 스터디는 역시 거짓말을 안하는지 A+을 안겨주셨다.
이번 학기 내내 또 힘(?)이 되었던 롯데자이언츠 김원중 선수의 한 마디. 해내야지 어떡해요.
그렇습니다. 이미 시작한 일인데요. 해내야지 어떡합니까?
자, 이런 마음으로 방학과 4학기도 힘차게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