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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며

가장 슬펐던 '잘자라'라는 그 말

by 이달아

여느 날과 다름 없는 하루였다. 으쌰으쌰 하루를 보내고 아이 둘을 재우다가 나도 잠들어버렸다. 꿈 속을 헤매고 있는데, 헛것을 본 것마냥 놀라 있는 표정의 남편이 나를 깨운다. "달아야 봐봐, 지금 OO방 난리났어" OO방은 내가 참여하고 있는 달리기 동호회 운영진 방이다. 듣자마자 왜? 무슨 일 있어? 하면서 각자 핸드폰을 켰다. 순간, 내가 한글을 못 읽기를 바랐다. 말도 안되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다.


OOO 본인상.


본인상이라고? 본인상? 친구 앞에 떡 하니 故자가 붙어 있었다. 어? 이게 말이 돼?? 남편에게 여러번 되물었다. 2025년 8월 19일, 친구는 일하다가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뉴스에 떠들썩하게 친구의 죽음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식을 안 건 밤 10시쯤이었는데, 자정이 넘어가자 유튜브에 쇼츠 하나가 올라왔다. 당 대표가 조문을 온 걸 찍은 것이었는데, 그 뒤 장례식장에 내 친구 OOO의 이름이 희미하게 보였다. 친구의 이름보다 더 희미했지만 내 눈에 자세히 보였던 건 친구의 양복 입은 사진이었다. 이럴수가.. 이틀 전 일요일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등산했던 내 친구가, 갑자기 장례식장의 주인이 되어버렸다.




평소 친구들에게 잘하고 선했던 친구였기에, 갑작스럽고 서울에서 아주 먼 지방에서의 장례식이었음에도 많은 친구들이 그를 찾았다. 동호회에서만 30여명이 넘는 친구들이 그의 가는 길을 배웅해줬다. 그리고 이어진 추모들.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피드에 친구와 관련된 추억들이 빼곡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중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말은, "잘 자라"였다.


이번 가을에도 어김없이 jtbc 마라톤 풀코스와 트레일제주100에 나가기로 한 내 친구는 운동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오랜 운동으로 다부진 몸과 튼튼한 다리가 내 친구의 큰 장점이었다. 친구는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동호회 내에서 토요일마다 훈련을 했는데, 친구가 떠나고 갤러리를 보는데 그가 없는 단체 사진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삶을 강건하고 멋지게 살던 내 친구가 잘 자야 한다니. 그 누구보다 너야말로 당장 깨어나 등산하고 러닝하고 트레일러닝하고 해야 하는데. 점점 밝아지는 여명과 붉게 차오르는 일출을 맞이하며 "아따 해 쥑이네"하고 말할 친구인데. 네가 왜 잘 자야하는거니..


친구들도 그렇지만 나 또한 아주 아주 많이 슬펐다. 나무의 초록잎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걸 볼 때도 눈물이 났고, 눈 앞에 펼쳐진 활자를 보면서도 눈물이 났다. 정말 모든 것 곳곳에 친구와의 추억이 있었다. 귀여운 카카오톡 대화도 있었다. 아 어쩌면 좋은가.


나는 요즘 매일 친구와의 추억이 깃든 곳을 지난다. 종합운동장역 출구 앞. 풀코스 마라톤을 다 뛰고 동호회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던 그 곳. 그곳을 따릉이로 지나가며 인사한다. "OO아 나 왔어~ 또 보자~"하며.




친구가 떠난 후 나에게는 3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번째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다 죽는 산재 사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친구는 말그대로 '일하다 죽었다'. 많은 언론에서 사고가 인재라고 떠들어댔는데, 한달이 지난 요즘 그 뉴스를 이야기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이 두 눈 부릅뜨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는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게 구조나 법, 제도가 바뀌고 있는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 지금 대통령이 산재 사고 처벌을 가중하자는 입장인데, 이러한 환경적 요소가 이어질 지도 볼 것이다.


두번째는, 한국에서 일어난 많은 사고들, 사망자가 있는 사고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세월호부터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재난 뿐만 아니라 가장 최근의 젊은 해경의 순직까지. 분명 당시에도 슬프고 마음 아프긴했지만, 친구가 떠난 뒤로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 명 한 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죽음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내 친구가 왜 어느날 갑자기 '잘 자야'했는지. 그 전후를 기억하고, 친구의 존재 또한 오래 기억해야함을.


세번째는, 단발머리가 되었다. 기부할 목적으로 오래 기르던 머리를 친구의 이름으로 기부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한 시간, 그 아이를 뱃속에 품고, 낳고, 성장한 긴 시간을 함께 해준 머리카락이었기에 거창하지만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 '새생명'의 희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길렀다. 아기를 품어낸 시간을 담은 머리카락이니 기쁨과 웃음이 되길 빌면서.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밝게 만들어줄 기쁨과 웃음이 친구의 이름과 함께 하기를. 친구의 이름 세 글자가 아주 오랫동안 세상에 남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멀리 퍼져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KakaoTalk_20250921_115931984.png 세상을 밝게 만들어줄 기쁨과 웃음이 친구의 이름과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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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생일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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