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물 속에 있던 시간
때는 2년 전, 여공에서 뛰고 여의도한강수영장을 함께 갔던 그 여름. 집에 갈 즈음, 내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연진이가 비치볼로 물에 떠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때 내 모습은 마치 조개를 꼭 잡고 물에 누운 보노보노 같았을까. 그렇게 처음 물 위에 떠서 본 파란 하늘은 지극히 파랗고 구름은 참으로 하얘서 모든 것이 - 물 위에 떠 있는 감각마저- 참으로 현실감 없다고 느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두번째 육아휴직이 끝나기 두달 전인 지난 9월, 별안간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다. 지금을 보내면 다시 배울 수 없는 미지의 미지를 더한 그 영역.
9월 1일, 물에 처음 들어가던 날. 강사님이 물로 총을 쏘며(??) 대답을 요구하시는데 아니 말을 하려고 하는데(물 들어옴) 물이 왜 계속(물 계속 들어옴) 코로 들어오나요. 그것부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을 배웠는지 ... 모르겠다. 기록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무언가 지나간 느낌이었다. 어느날은 발차기를 하고 있고, 어느날은 팔찌르기를 하고 있더니 2주 반이 지나자 어느 정도 자유형이란 걸 구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에 못 뜨던 사람에게 주 5회반은 정말 강력한 것이었다.
3주가 지난 어느 날, 물에 퐁당 들어갔는데 다른 날과 달랐다. 물이 포근했다. 드디어 물과 친해졌구나. 물 속에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졌다. 밤에 잠이 안 올 때 물을 생각했다. 오로지 물과 나 밖에 없는 세상. 앞사람 발차기에서 나온 물보라가 꼬로로로 얼굴을 때리면 즐거운 세상. 50m 레인은 너무 길어 내가 잠깐 쉬어도 티가 안 나는 넉넉한 세상.
수영을 배우며 삶의 태도를 복기했다. 하나-둘에 팔을 돌리고 팔을 밀면서 오른쪽 팔에 고개를 붙여야 숨을 쉴 수 있는 자유형. 그 동작을 제대로 하려면 가장 먼저 '조급함'을 버려야 했다. 더 빨리 나가고 싶어, 속도를 내면 호흡이 엉망이 되었고 금세 숨이 찼다. 강사님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도 "천천히"였다. 천천히. 조금 더 천천히. 자유형이 freestyle swimming, 말 그대로 자유롭게 헤엄치는 영법이란 걸 아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조급함 속에 자유가 없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유심히 보며 모방하되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오로지 물 속에서 연습을 해야 느는 것이 수영이었다. 모든 운동이 똑같지만, 공들여가며 내 것으로 체득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조급함을 버리고 시간을 들여가며 내 것으로 만들기. 어떤 일을 '할 수 있다' 말하려면 당연한 진리였다.
조급해하지 않고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모든 일의 진리를 수영을 통해 다시금 새겼다.
어떤가. 수영을 꽤 재밌게 배운 사람 같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배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겨우 시작한 시점, 나는 고민 끝에 10월 강습을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무척 즐겁지만, 복직 전 실력을 쌓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많이 아쉬웠던 걸 보면, 수영 배우는 걸 꽤 즐겼던 듯 하다.
다시 수영을 배울 수 있는 날이 올까?
수영을 배우며 수영을 다룬 책도 읽었다. (이쯤되면 시켜줘, 명예수영인)
스토아 철학은 잘 모르지만 글귀 하나 하나가 참 여운이 있는 책이다. 조급함에 일상이 조금 힘들 때, 깨달음을 주는 구절이 많이 있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제때 이루어진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한 시간 동안 뛰어 땀을 내고 샤워하라. 행복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구절을 수영장 가는 햇살 가득한 버스에서 읽었다. 행복이다.
수영을 정말 사랑하는 저자가(자신의 아이들을 '물의 아이들'이라 칭한다) 자료조사와 인터뷰 등 노력하며 성심성의껏 만든 책.
수영에 얽힌 사연은 정말 누구나 하나씩 있는 것일까. 나도 수영 하나 배웠다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까지 남기는 걸 보면 사연이 있는 것일지도.
"수영이 생명을 살린다, 그 속에 자유가 있다."
난파된 배에서 육지까지 오기 위해 영상 5도의 차가운 바다를 6km나 헤엄쳤다는 구드라우구르의 이야기는 난생 처음 접한 거라 충격적이기까지.. (그는 혼자 살아남았고, 그의 수영을 기리기 위해 아이슬란드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수영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실제로 그 거리를 헤엄쳐보는 대회.)
그래서, 다시 수영을 배울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