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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Jul 19. 2024

'육아 관련 시'를 쓰며 알게 된 것들

역시 사람은 직접 경험해 봐야 느끼고 배우며 성장한다.

  지금은 메거진에서 지웠지만, 최근까지 '육아하며 시를 쓰며'메뉴를 만들어 육아 관련 시를 적어보았다. 내가 적고 싶은 내용을 '시'라는 형식의 글로 표현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사실 그때 적은 글이 '시'일 수도 있고, 간략한 개조식의 문장 나열 수준의 글 일 수도 있다. 그러한 글들을 적으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을 적어보려 한다.


  '육아하며 시를 쓰며'를 만들어서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였다. 매일 글을 한 편씩 올리고 싶은데, '결혼육아지침서'는 한 편을 적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산문 형식의 다른 글들도 마찬가지로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작품이 하나 나온다. 하지만 '시'는 내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구상하면 쓰는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이미 머릿속에 있는 글을 자판으로 옮겨 적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머릿속으로 주제를 하나 잡고 시를 구상하면 재미가 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상황이 보이면 그 장면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면 좋을지, 어떤 순서로 전개를 할지 등을 머릿속에서 대략 밑그림을 그린다. 그런 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여유시간이 생길 때  자, 한 자 적어서 작품을 완성하며 혼자 뿌듯해한다. 그러면서 시인들이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을 글로 나타내고는 싶고, 길게 쓰기는 싫고, 글 쓸 시간은 없고...' 이런 마음으로 시를 쓰지도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시를 쓰고 나면 주욱 한 번 읽어본다. 신기한 것은 길게 주저리주저리 풀어서 적을 내용이, 짧고 간결한 단어와 문장만으로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 짧은 문장 하나로도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장면이나 일의 순서가 글에 녹아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아! 이런 재미로 시를 쓰는구나! 아주 효율적인 글쓰기인데! 하면서 내 무릎을 탁 치며 콧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내가 시를 쓰는 것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스스로를 높여 보기도 한다.

  육아 관련 시를 쓰면서 생긴 변화 중의 하나는, 아이들과 관련된 일들을 좀 더 자세하게 보려고 노력하고, 장면이나 대화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유치원버스놀이'를 시작하는 둘째의 표정, 몸짓, 이동하면서 했던 말들, 그때의 분위기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려 애쓴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한 줄씩 시를 적으면, 그때의 기분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흡사 그날 하루 장면을 동영상을 찍어 놓듯이, 그 길을 걷던 나와 둘째의 모습이 그려진다. 함께 걸었던 그 시간이 글을 통해 박제된 기분이 든다.


  또 하나 생긴 변화는, 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내 마음이 불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가 오는 어느 저녁에 둘째가 산책을 가고 싶다고 한다. 그 말을 꺼낸 시각은 20시. 조금 있으면 씻고 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산책을 나가겠다고 하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보석 같은 사람이 한 마디 한다.

  "내일 주말이고, 애가 비 올 때 첨벙첨벙하고 싶다는데, 그거 한 번 못 해주나? 예전에 행복이는 첨벙첨벙 참 많이도 했었다."

  생각해 보니, 둘째는 비 올 때 장화를 신고 웅덩이를 밟는 경험을 시켜주지 못한 것 같다. 그래! 나가자! 옷 입어라!


  둘째는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아파트 로비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웅덩이가 있는 곳에서는 장화에 물이 들어오건 말건, 첨벙첨벙 발을 굴린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그 모습을 촬영한다.

  "아빠, 내 모습 찍고 있어?"

  "응. 찍고 있어. 더 세게 첨벙첨벙해봐."

  "와! 신난다!"

  둘째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내 머릿속에는 이 장면을 어떻게 적을지 구상하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참 지치고 화가 나는 상황이었겠지만, 이 장면을 적을 생각을 하니 화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육아 관련 시를 하나하나 쓰면서, 누군가가 나중에 나를 '육아시인'이라 불러주지 않을까? 육아를 하며 그 모습과 나의 일상을 시 형식의 글로 나타내는 것이 나름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사정이 생겨서 올렸던 글을 다 발행 취소하고, 지금은 육아 관련 시를 올리지 않고 있다. 나의 글쓰기 패턴이 완전히 달라진 요즘이다. 육아 관련 시를 적다가 안 적으니, 좀 서운하기는 하다. 발행은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지내면서 시로 표현하고 싶은 장면을 적어 둘까 싶어 글머리나 제목은 가끔 저장해 둔다.


  육아 관련 시를 계속 적어서 축척해 두어 나중에 오 년이나 십 년이 흐른 후에, 이 시들을 하나하나 발행하면 어떨까? 그러면 그때 나는 육아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있겠지만, 나의 글은 아직 육아 중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가 정신없는 육아를 하며 살고 있는 한 아빠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글을 통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분명 십 년이 흐른 후에는 나의 브런치에 구독자가 더 많아질 것이고, 그 사람들은 나를 육아하는 아빠로 생각하며 댓글을 남기겠지. 그럼 나는 브런치에 글을 적는 동안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젊은 아빠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안 되는 점이 있다. 예전에 한창 육아 관련 시를 쓰고 발행할 때는 시를 적고 싶고, 글감이 눈에 잘 들어왔다. 발행을 하지 않고, 우선 시를 저장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후부터는 육아 관련 시가 적히지 않는다. 발행을 하지 않고, 묵혀 두었다가 십 년 후에 발행하려고 하니 시가 적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 '관종'인가 보다. 발행을 하고 댓글이나 라이킷이라도 달려야 글을 적을 마음이 생긴다.


  육아 관련 시를 잠시 써봤던 사람이, 그러한 시를 쓸 때 들었던 마음을 주저리주저리 한 번 적어 보았다. 요즘 글을 왜 적는지 나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글 쓸 시간도 없고, 글 쓴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힘든 일을 왜 사서 하는지. 그저 내 마음에 든 생각을, 내 마음속에 난 길을 따라 걷다가 보이는 장면들을 '문자'라는 매개체로 표현하는 자체가 흥미롭고 재미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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