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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Oct 24. 2024

마이너스 통장은 '마르지 않는 샘물'

대부분의 중산층은 하나쯤 집에 있는 샘물, 그 이름은 '마통'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는 일은 참 별로다. 내가 돈이 없어서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상대방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는 자체가 참 싫다. 돈을 빌려 달라는 말을 듣는 상대방도 참 부담스러울 것이다. 돈 문제로 인해 친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개인이 아닌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은행 입장에서는 이자를 받는 돈장사이고, 돈을 빌리는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대출이다.


  첫째가 태어나고 보석 같은 사람이 육아휴직을 하니, 가계 소득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 매어도 쓰는 돈이 줄지 않고, 항상 돈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탈출구가 '마이너스 통장', 줄여서 '마통'이었다.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 만들기는 쉬웠다. 우선 천만 원 한도를 설정하여 돈을 야금야금 꺼내어 썼다. 그러니 숨통이 좀 틔이는 기분이다. 미래의 나에게 돈을 약간 빌려 쓰는 느낌. '나중에 다시 둘이 벌어서 갚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돈을 출금했다. 마통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나의 돈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해 주었다.


  그런데 천만 원 한도가 금방 다 찬다. 구백만 원이 넘어가니, 왠지 모르게 압박감이 들면서 돈에 대한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른다. 은행에 가서 한도를 늘린다. 이천만 원으로 한도를 늘리고 나니, 다시 마음이 가벼워졌다. '뭐 인생 별 거 있나? 지금 돈 없을 때 마통 만들어서 미래의 나에게 빌려 쓰고, 나중에 갚으면 되지.' 그러면서 몇 달이 흐르니, 다시 일천구백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언제 또 이렇게 많이 썼나? 참 돈이 줄줄 세는구먼. 그러는 사이에 여보가 복직을 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며 가정 경제가 조금 나아졌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사망보험금이 몇천만 원 나왔다. 나도 모르던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자식 몰래 어머니께서 보험을 들고 계셨던 것이다! 형과 내가 반씩 사망 보험금을 나누어 가졌다. 마지막까지 자식을 챙겨주신 어머니께 무한한 감사함을 느낀다. 그 돈으로 마통을 채우고, 더 이상 마통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 가족에게 더 이상 마통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여보가 또 육아휴직을 일 년 하고, 이어서 나도 육아휴직을 반년 하였다. 아기가 태어나 식구는 네 명이 되고, 돈 들 곳은 많은데, 소득은 더욱 줄어들었다. 이번에는 마통을 망설임 없이 만들었다. 어차피 나중에 한도를 늘릴 것 같아서 처음부터 삼천으로 만들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으니, 처음에는 돈에 대한 부담 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그 삼천의 한도가 어찌 그렇게 또 빨리 찬단 말인가! 식구가 세 명 있을 때와 네 명 있을 때는 지출의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


  그리하여 카카오에 의뢰하여 또 마통을 개설하였다. 두 번째 샘을 팠다. 첫째는 점점 성장하여 학원을 더 다닌다. 태권도, 영어, 피아노의 학원비가 매 달 나간다. 방학 때는 가족 여행을 떠난다. 현재 돈이 없지만, 지금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는 추억도 포기할 수 없기에. 그러면서 흥청망청 쓰지는 않았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현명하게 지출하며 산다고 생각하였지만, 또 카카오 마통도 목을 조여 온다. 왜 그럴까? 월급이 오르는 것보다 물가가 오르는 비율이 너무나 큰 것 같다. 오만 물가가 다 올라서 조금만 장을 봐도 십만 원이다. 좀 괜찮은 외식을 네 가족이 하면 거의 십만 원이다. 돈이 참 쓰려고 하니, 너무 헤프다.


출처: 블로그, 검링의 디지털 노마드 생존기

  급기야 여보와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긴축재정에 들어간다. 외식은 최대한 줄이고, 놀러 가는 것도 최소의 비용으로 놀러 갈 계획을 세운다. 장을 보는 횟수도 줄이고, 카드 사용도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참 삶이 구질구질한 기분이다. 검소하게 산 것 같은데, 아껴 산 것 같은데, 이보다 더 아껴 살아야 하다니!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아끼는 수밖에 없다.


  돈을 아끼려고 마음먹으니, 생필품이 똑 떨어진다. 물티슈가 바닥난다. 식용유 병이 바닥을 드러낸다. 여보의 화장품이 똑 떨어진다. 괜스레 밥을 먹어도 돌아서면 배가 고픈 것 같다. 평소보다 먹고 싶은 음식이 더 많아진다. 아이들이 치킨 노래를 부른다. 평소에는 그냥 배달을 시켰겠지만, 돈을 좀 아껴 볼까 싶어 치킨을 포장해 온다. 아이들이 평소보다 치킨을 전투적으로 먹는다. 돈을 아끼려니 마음이 더 휑한 느낌이다.


  돈이 없으면 돈 들어갈 곳은 더 많아진다. 차 시동을 거는데 '타이어 압력 낮음 보충 요망'이라는 문구가 뜬다. 자동차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니 얼른 타이어 가게에 가서 점검을 받아왔다. 타이어에 나사가 박혀 있다. 21년 산이라 타이어 연식이 꽤 되어서 교체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앞 타이어 두 짝을 교체하는 비용이 삼십만 원 넘게 들었다. 아직 좀 더 탈 수 있었는데 타이어값이 드니 참 아깝다.


  이제는 소맥도 당분간 먹지 않으려 한다. 애들 재우고 편의점에 가서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사 와 먹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돈도 모이고 모이면 큰 돈일 것이다. 대신 정말 술이 고프면 막걸리 한 병을 사다 먹어야겠다. 막걸리가 제일 만만하다. 가격도 싸고, 특별히 안주도 필요 없으니. 그냥 몸에도 안 좋은 술을 이참에 끊는 것도 좋을 듯싶다. 예전보다 술에 대한 욕심이 그리 크지는 않다. 안 먹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체육전담이라 월급이 꽤 적은 편이다. 둘째를 케어함에 있어 전담이 용이할 듯하여 그렇게 전담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담임도 하고, 부장도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담임 수당과 부장 수당이 붙으면 가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통을 조금씩이라도 채워서 매달 내는 이자라도 좀 줄여야 한다. 마통을 과연 언제 없앨 수 있을까?


출처: 블로그, 친절한 선미의 친절한 기록장

  '오후의 글쓰기'를 쓴 이은경작가님은 예전에 돈이 없어서 단팥빵 하나를 못 사 먹어서 너무나도 서러웠다고 한다. 책을 쓰고, 경제적으로 나아져서 이제는 단팥빵을 두 개, 세 개도 사 먹을 수 있다면서 기뻐하던 책 내용이 떠오른다. 모두가 바라는 경제적 자유를 나도 이룰 수 있을까? 로또에 당첨이 되면 가능하겠지만, 그럴리는 없을 것 같다. 여기 브런치에 글을 적어서 모으고, 글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릴까?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족쇄를 끊어 버리고, 부를 축척하고 싶다. 마르지 않는 샘물을 메우고 다시는 그 샘을 파지 않으며 살고 싶다. 첫째만 낳고 둘째를 안 낳았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았을까? 그래도 후회는 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부족해도 둘째가 있어서 우리 가족이 더욱 행복하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네 식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면 그걸로 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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