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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Oct 26. 2024

아빠는 거짓말쟁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는 이런 경우

  네 식구 모두 모여 아침밥을 먹는다. 밥 먹다가 어제 두드림 영어 수업한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두드림 수업이란 해당 교과의 성적이 너무 떨어지는 학생을 지도하는 수업이다. 나는 영어가 부족한 학생에게 주 2회 일 대 일로 가르치고 있다. 어제는 무지개 색깔을 영어로 표현하는 공부를 했었다. 무지개 색깔 중 남색은  '인디고', 보라색은 '바이올릿'으로 적혀 있었다. 보통 남색은 '네이비'로 알고 있었는데, '인디고'로도 표현하는구나! 보라색이 '퍼플'로 알고 있는데, '바이올릿'으로도 표현하네!


출처: 웹, kor.pngtree.com

  5학년인 첫째에게 물어본다.

  "무지개 색깔 영어로 말할 줄 아나?"

  "빨주노초파남보? 영어로? 응 알고 있지.'

  "말해봐. 빨?"

  "레드"

  "주"

  "오렌지"

  "노?"

  "옐로우"

  그걸 듣고 있던 6살 둘째가 한 마디 끼어든다.

  "아빠. 나한테도 물어봐죠."

  "그래. 오빠 다 하고 물어봐줄게."


  계속 이어서 첫째에게 물어본다.

  "초"

  "그린"

  "파"

  "블루"

  "남?"

  순간 첫째가 고민을 한다. 남색이 영어로 뭘까? 잠시 고민하더니

  "네이비 아니야?"

  "응 네이비도 맞고, 인디고라고도 해."

  "아! 인디고!"

  "보"

  "퍼플?"

  "응. 퍼플도 맞고 바이올릿이라고도 해."


  이 글을 쓰기 위해 색깔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남색 중 '네이비'와 '인디고'의 차이는 '네이비'가 조금 더 진한 남색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보라색 중 '퍼플'과 '바이올릿'은 섞은 색의 비율에 따라 조금 다르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1:1 비율로 섞으면 '자주색'이 되고 그것은 '퍼플'이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1:2 비율로 섞으면 '청자색'이 되고 그것이 바로 '바이올릿'이다. 보통 영어에서 보라색은 '퍼플'이라 부르고, '바이올릿'은 '퍼플'에 포함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영어 색깔 공부를 하다니!


출처: 옐로 펜슬

  첫째와의 묻고 답하기가 끝나고 둘째에게도 하나씩 색깔을 말하며 질문을 한다. 둘째는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대답한다.

  "빨"

  "레~드!"

  "주?"

  "오~리인지!"

  "노"

  "옐로~우!"

  요새는 유치원생도 이렇게 영어를 잘 말한다. 참 별 세상이다.


  "우와! 언제 이런 걸 다 배웠대? 대단한데! 그럼 다음 색인 초?"

  "그리~인!"

  "파."

  "블루~우!"

  "남?"

  순간 둘째의 눈빛이 흔들린다. 남색을 배우지 않았고 아까 오빠와 아빠가 말할 때 들었던 단어가 기억이 안나는 눈치다.


  "남?"

  "음..."

  "남색은 영어로 인디고. 인디고라고 말해."

  그 말을 들은 둘째가 대뜸 하는 말이

  "거짓말!"

  "엥?"

  "아빠 거짓말이지!"

  순간 나는 딸에게 거짓말하는 아빠가 되었다. 내가 가르쳐 준다고 말한 '인디고'라는 단어가 거짓말처럼 들였나? 집에서는 아빠지만, 나도 학교에 가면 선생님인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석 같은 사람이 옆에서 한 마디 한다.

  "평소에 애한테 어떻게 말했길래, 당신한테 거짓말한다고 말할까? 하하하!"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마지막까지 색깔을 말해본다.

  "보라색. 보"

  "퍼~얼플!"

  "응 잘했어. 퍼플이라고도 하고, 바이올릿이라고도 한단다."

  "아빠. 거짓말이지?"

  "어? 내가 왜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여보도 첫째도 빵 터져서 웃고 있다. 순간 아빠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상황이 너무 재미있다는 듯이.


  둘째는 왜 나에게 '거짓말'이라는 말을 하였을까? 내가 그리도 못 미더웠나? 딸은 아빠가 하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인가? 별 생각을 다 하는 거짓말쟁이 아빠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속담이 생각났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아무리 평소에 장난을 좀 쳤기로, 참말을 하고 있는데 거짓말이라니! 남색은 영어로 인디고라 알려주고 있는 나에게 거짓말이라니!


출처: 웹, dict. wordrow.kr

  6학년 국어 단원 중에 '관용표현과 속담'을 배우는 단원이 있다. 나중에 6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 그 내용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들려줄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

  "얘들아,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라는 속담은 이런 경우에 쓰인단다. 선생님이 6살 딸에게 무지개 색깔을 영어로 뭐라 말하는지 문제를 내고 있었지. '빨주노초파'까지는 잘 말하더니, 남색을 잘 몰라하길래, '남색은 인디고'라고 알려줬지. 그러니 선생님 딸이 나한테 뭐라 했게? '거짓말!'이라고 말하더라."


  관용표현 수업시간에 그 에피소드를 들려주면, 아마 애들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라는 표현의 의미보다, '남색을 인디고라고 말한 거짓말쟁이'를 더 기억하지 싶다. 아이들은 신기하게 수업 내용보다 관련 없는 사적인 이야기를 더 기억을 잘한다. 그 기억력을 공부에 쓰면 참 좋으련만.


  딸은 아빠가 만만하다. 엄마는 딸에게 야단치거나 화를 내기가 수월하다. 아빠는 딸에게 잘 그러지 못한다. 아빠의 말투가 거칠어지면 '다정하게~'를 말하며 나의 입을 막는다. 딸의 잘못된 행동으로 아빠의 표정이 굳어지거나 나빠지면 아빠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점점 딸은 아빠를 함부로 대한다. 아빠는 가마꾼이고, 이동 수단이다. 그렇게 아빠는 딸에게 항상 이길 수가 없는 사람이다. 급기야 오늘 아빠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남색'을 '인디고'라고 말하는 거짓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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