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활동은 '점심식사'가 아닐까 싶다.급식소 관련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점심때 맛있게 먹는 일이 교육활동 중 가장 중요하다. 공부도, 친구와 사이좋게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점심 급식'을 단연 1순위로 뽑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음식을 해주는 것,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은 아주 복된 일이다. 급식에 나온 음식을 골고루, 남김없이 다 먹어야 나의 건강에도 좋고, 지구환경에도 좋다. 오늘은 '급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필자가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교대 부속초등학교 급식 도우미. 2학년 교실에 음식이 실려있는 수레를 끌고 교실로 가서 배식을 하는 일이다. 교실에 있는 귀여운 아이들도 볼 수 있고, 점심식사도 해결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알바였다. 그때 내가 들어간 반의 담임선생님은 급식지도를 정말 칼 같이 하는 분이셨다.아이들이 식판의 음식을 밥알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먹게 하는 분이었다. 조금은 과하다 싶고,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급식지도를 하는 담임의 방침은 알겠으나 저학년에게 좀 가혹한 듯한.
아이들은 자신의 식판에 음식을 받을 때 아주 신중하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되기에 배불리 먹을 만큼이 아니라, 정말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받았다.
"밥 조금만 덜어주세요."
"김치 두 조각만 주세요."
그렇게 음식을 받은 다음, 절에서 스님이 발우공양하듯이, 식사를 하였다. 밥과 반찬을 비율에 맞추어 먹다가 김치 한 조각이 남으면 맵지만 그냥 씹어서 삼켰다. 국물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식판을 입에 대고 후루룩 마셨다. 아이들은 식사를 마친 후 담임에게 식판을 검사 맡고, 우리에게 식판을 주었다. 급식 도우미 입장에서는 좋았다. 짬통에 버릴 음식이 없고 식판이 깨끗해서 수거하기 편하였다.
현직에 나와서 담임을 맡아 급식 지도를 하였다. 아이들이 급식으로 받은 음식을 골고루 먹도록, 최대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도록. 나의 급식 지도 방침은 '반찬은 다 먹기, 국의 건더기는 다 먹기'였다. 당시 칭찬도장 제도를 하고 있어서 깨끗하게 식판을 비운 아이들에게 칭찬도장을 찍어주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나에게 와서 식판을 보여준다. 나의 기준에 부합한다면 나는 '엄지 척'을 해주었다. 사실 초등교사는 밥도 편하게 먹을 수 없다. 몇 숟가락 뜨다 보면 빨리 먹은 아이가 온다.
"와! 깨끗하게 잘 먹었네! 우리 000 파이팅!"
엄지척을 해주고 밥 먹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나의 식사도 끝난다.
엄지척을 받은 아이들은 '앗싸!', '오예'를 외치며 기분 좋은 표정으로 식판을 정리하러 간다. 편식을 하지 않고 밥을 잘 먹는 아이들에게는 급식 관련 칭찬도장을 받는 것이 쉽다. 하지만 편식을 하는 아이는 그날 메뉴에 따라다르다. 자신이 먹기 힘들어하는 음식이 나온 날에는 칭찬도장받기를 포기한다. 추어탕, 멸치볶음 등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적당히 먹을 수 있는 만큼 밥을 먹고 식판 검사를 한다. 아쉬워하는 표정과 함께 내일을 기약하며.
식판 검사를 하는 급식 지도의 부작용도 있기는 하다. 식판을 깨끗하게 다 비우기 위해 의리 있는(?) 밥 잘 먹는 아이가 대신 반찬을 먹어주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싫어하는 음식을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구역질을 하기도 한다. 교묘하게 선생님을 속이려는 아이는 우선 식판에 남은 못 먹는 음식을 입에 넣고 검사를 맡는다. 식판을 정리하러 가면서 짬통에 입 속의 음식물을 뱉어서 버린다. 음식은 다 못 먹겠고, 칭찬도장은 받고 싶어서 나름 머리를 쓴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도 있지만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기를 실천하자는 취지로 식판 검사를 실시하였다. 편식을 하는 아이는 억지로라도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본다. 어떤 아이는 코를 막고 음식물을 씹어 삼킨다. 영양소가 골고루 갖추어진 식단을 짜고, 급식소 아주머니들이 고생하여 만든 음식을 잘 먹어서 적게 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먹으면 음식이고, 남기면 음식물쓰레기가 되니, 최대한 뱃속에 넣는 것이 나의 건강에도 좋고, 지구의 건강에도 좋다.
코로나 이후 급식 지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가 급식소에서 밥을 먹을 때만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투명 칸막이 안에서 조심스럽게 신속히 밥을 먹는다. 어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살짝 마스크를 올려 숟가락을 입에 넣고 다시 마스크를 바로 내린 후 음식물을 씹는다. 그러한 상황에서 식판 검사는 당연히 할 수 없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신속히 밥을 먹고 마스크를 다시 착용하고 급식을 마쳤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급식 지도를 하지는 않는다. 코로나 이후 변한 것도 있고,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교사가 식판 검사를 하며 급식 지도를 하는 것에 대하여 학부모들이 반기지 않는다. 예전에는 '급식지도를 하여 우리 애가 안 먹던 음식도 먹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학부모도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여서 우리 애 스트레스를 주나요?'라고 말하는 학부모가 많다. 자연히 담임은 식판 검사를 안 하게 된다. 점심시간에 식판 검사를 해서 괜히 민원이 들어오는 것보다, 조용히 밥 먹는 것이 백배 낫기 때문이다.
요즘 초등 1학년 학부모가 좋아하는 담임 중에는 '급식 지도를 하지 않는 선생님'도 그 항목에 있다고 한다. 아이가 학교에 가서 못 먹는 음식을 억지로 먹게 하는 담임을 만나면 학부모들이 싫어한다. 담임은 굳이 악역을 맡을 이유가 없다. 사실 나의 자녀도 아니고, 그 아이가 편식을 하던, 급식을 다 먹던, 남기던 상관없다. 좋게 보면 아이의 급식에 대한 자율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방관이다. 아이의 나쁜 식습관과 편식을 보고도 담임은 그저 침묵하는 것이다.
그렇게 식판 검사를 하지 않으니 고학년 아이들은 이제 막 나간다. 예전에 담임이 식판 검사를 할 때에는 먹기 싫은 음식도 다 받아서 어떻게든 먹고, 깨끗하게 다 먹으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학년들은 자기가 먹기 싫은 반찬은 받지 않는다. 먹기 싫은 국도 아예 받지를 않는다. 자기 입에 맞는 반찬과 밥만 먹는다. 밥을 먹다가 음식이 많이 남아도 대충 먹고 짬통에 버린다. 예전보다 음식물쓰레기가 훨씬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6학년 담임을 하면서 도저히 그 꼴을 보다 못해 아이들에게 급식 관련 정신교육을 하였다.
"급식받아서 대충 조금만 먹고 버리는 애들이 많던데, 너무 아깝지 않니? 급식소 아주머니들이 고생해서 만든 음식인데. 먹기 싫으면 조금만 받거나 받지를 말고."
"세상 어디에 누가 나에게 이렇게 영양소가 골고루 갖춰진 식사를 차려주겠니? 감사한 마음으로 정량을 받아서 다 먹도록 해라."
알림장에도 적고, 학부모에게도 자녀에게 급식 관련 한 마디 해주십사 학급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그때뿐이다.싫어하는 메뉴가 나오면 먹고 싶은 것만 대충 먹고, 남은 음식을 몽땅 버린다. 담임이 식판 검사를 안 하니까.
출처: 블로그, k채널
자율적으로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남은 음식을 버리는 것과 식판 검사를 하여 최대한 음식을 먹게 하는 것 중 무엇이 좋을까? 편식하는 아이에게 먹기 싫은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이는 것과 먹기 싫어하는 음식은 아예 입에 안 대더라고 넘어가는 것 중 무엇이 좋을까? 지금의 급식 분위기는 너무나도 자율적이고 허용적이다. 아이들이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낄지도 의문이다. 다시 식판 검사를 하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