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은 초등교사이다. 2006년 9월에 첫 발령을 받아, 지금까지 약 18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거의 20년 가까이 시간이 참 빨리도 흘렀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 변한 시간. 그 사이 참 많은 것이 변하였다. 초등학교 안의 교육환경과 아이들, 초등학교 밖의 학부모와 사회적 분위기가, 제가 초임 발령받았을 때와 지금은 참 다르다. 그 시대에 맞춰 적응하여 어떻게든 살아가야한다.
브런치에 글을 적기 시작하면서 초등교사 관련 글을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교직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생각, 느낌들. 지금 초등교사들이 안고 있는 어려움, 초등교육의 현실태 등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글 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직장생활에서의 고충, 넋두리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읽으면 공감할 만한 내용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글은 '에이, 뭐 이런 일을 썼어! 다들 이 정도는 스트레스받고 사는 것 아니야!' 하며 반감이 드는 글도 있을 것이다.
초등교사 관련 글을 적으며 나는 약간의 통쾌함과 후련함을 느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던 심정이랄까? 직장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글로 적으면서 내 마음속의 찌꺼기를 흘려보내는 느낌이랄까? 나의 글을 읽으면서 현재 초등교사들 중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글은 그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작가는 글로 표현하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고, 내 마음이 정화된다. 독자는 그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하고 위안을 얻기도한다.
출처: 포토뉴스, news.naver.com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건 그때 나름의 고충과 애로사항이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를 학생으로 보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교사로 살고 있다. 80년대, 90년대에는 학교에서 구타가 허용되었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데모를 하고, 경찰들도 시민들 잡아다가 고문을 하는 세상에서 학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인권을 중요시하는 지금, 학생 인권을 너무나 강조를 하니 교권이 무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세월이 흘러 2030년, 2040년이 되면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고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것이다.
90년대 후반 필자가 고등학교 때의 일이 생각난다.한 학생의 삐딱한 말과 행동으로 열받은 국어교사가 그 학생을 불러내 귀싸대기를 두 차례 가격하였다. 학생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순간 반 분위기는 얼음장이 되었다. 귀 쪽을 부여잡고 있던 그 학생의 학부모가 다음날 학교 측에 연락을한다.
"선생님한테 맞아서 우리 애 귀에 고막이 터졌어요!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구타가 허용되었지만 너무나 크게 다칠 경우에 그런 민원이 발생하였다. 그때 교사들은 때릴 수는 있으나 적당히 때려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2020년대가 되었다. 지금은 학생을 때리는 행위도, 벌을 주는 것도, 심한 말을 하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 시대이다. 교사도, 학생도 그에 맞게 적응하여 살아가고 있다. 학생은 점점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닫고, 교사는 점점 사명감과 의욕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에 더불어 학부모들의 요구사항과 민원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신의 집에서 다들 귀한 자녀이고, 학부모들도 배운 만큼 배운 사람이라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며 학교 측에 다양한 요구를 한다. 교사들은 그에 대응하며 살 길을 모색하며 교육활동을 한다.
2040년대가 되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저출산고령화가 점점 더 가속화가 되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자체가 엄청 줄어들 것이다. 지금 어린이집, 유치원이 문을 닫고 있고, 그 현상은 초등학교로,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가 문을 닫지 않는다면 학급당 인원수가 급격히 줄 것이다. 필자가 학생 때는 3~40명, 초임발령 때는 20명 대 후반, 지금은 20명 대 초반, 나중에는 10명 후반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사회는 유지되고, 학교는 수업을 할 것이다.
학급당 인원수가 적어졌지만, 각 개인은 더욱 통제하기 힘들어 교사가 더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학급에서 정말 힘들게 하는 VIP학생을 특별 관리하는 시스템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학생을 특별 관리하면 학부모의 반응도 제각각일 것이다. 고마워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거부하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 등. 그렇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회가 변함에 따라 학교도, 교사도 변하면서 삶은 계속된다.
지금 내가 적은 이 글들도,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나면 그때를 기억하는 기록이 될 것이다. 2020년대 당시 초등학교가 어떠했는지, 교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 90년대에 유명했던 가수 '샾'의 노래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의 가사 한 소절처럼.
"삶의 반칙선 위에 점일 뿐이야.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야.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 뿐이야."
초등교사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이 변해가는 과정 속에 한 초등교사가 그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출처: 블로그, 사소함과 특별함 사이
예전에는 초등교사가 교육자의 면모가 강했다면, 지금은 교육자보다는 보육자에 가깝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가 점점 돌봄 사회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 초등학교도 피해 갈 수 없으리라. 그에 맞게 초등교사도 마인드를 바꾸어,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교육자에서 보육자로 역할이 점점 변하면서, 존경은 없어지고 존중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하며 사는 것이 맞는데, 초등교사에 대한 존중이 없어졌다. 교권이 바닥을 치다가 이제는 저 깊은 땅 속에 묻혀 버렸다.
작년 서이초 교사가 과도한 학부모 민원,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였다. 젊은 여교사가 기댈 곳이 없었고, 보호받을 수 없어 선택한 자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애도하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학교 현장에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교사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 사회적 분위기가 전혀 없다. 아마 점차 나아질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세 발 나아가고, 두 발 후퇴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지금은 두 발 후퇴하는 시점이라 생각하련다.
브런치북의 커버사진을 '서이초 1주기 추모' 사진으로 선택하였다. 내 브런치북이 조그마한 힘이 되길 바란다. 힘들어하는 초등교사들에게, 초등교사를 꿈꾸는 예비 초등교사들에게, 초등교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 변화에. '초등교사 계속할 수 있을까 1부' 이후에도 계속 글을 모아 2부, 3부도 적어볼 계획이다. 그러면서 초등교사의 현실을 알리고, 내 마음을 가볍게 하련다.
초등교사의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승진을 하여 교감, 교장으로 관리자가 되는 길, 그냥 주욱 평교사로 교직생활을 하는 길. 나는 그 두 길 중 후자를 선택하였다. 영화 비트에 나오는 명대사처럼'국수처럼 가늘고 길게 살 거야!'를 외치며, 내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한 평교사를 계속할 것이다. 이 브런치북은 그러한 나의 다짐이자, 울부짖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