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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Oct 20. 2024

설마, 지금 오시진 않겠지?

마음먹은 순간 큰 일을 치러야 한다. 미적거리면 손해다.

  07시 20분.

  병원에서의 아침식사 시각은 7시 30분이다. 아주머니께서 아침밥을 우리 병실로 가져다주신다. 바닥에 누워 잤던 이불을 주섬주섬 개고 일어난다. 아들은 아직 꿈나라에 가 있다. 자면서 링거줄이 걸리적거리는지 뒤척이면서 잠을 잘 못 자서 더 자게 내버려 둔다. 나 또한 간밤에 잠을 설쳐서 잠시 누워 눈을 감고 뒹굴거린다.


  07시 50분.

  아들을 깨워서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는다. 병원에서 먹는 밥은 점점 맛이 없어진다. 첫날에는 먹을만하더니, 매끼 먹을수록 반찬도 비슷한 것 같고, 입맛도 없다. 낙지젓갈과 김을 추가하여 밥을 먹는다. 아들과 둘이 마주 보고 먹는 아침식사.

  "꼭꼭 씹어서 많이 묵어라."

  "아빠도!"

  아들이 즐겨보는 유튜브를 함께 보며 식사를 한다. 교양만두, 흑백요리사 관련 동영상, 소맥거핀 등을 보며 '요새 우리 아들이 이런 걸 보는구나!'


  08시 20분.

  보통은 아침에 의사가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회진을 왔다. 의사가 오기를 기다리며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솔솔 뿌린다. 복도에 있는 정수기에 가서 뜨거운 물을 종이컵 반 정도 채워 온다. 내가 좋아하는 종이컵 커피 물의 양은 반이다. 커피가 너무 진하지도, 너무 연하지도 않은 농도. 얼른 병실로 들어와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커피를 호로록 마신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 오려나?


  08시 40분.

  사실 아침밥을 먹고 나서부터 응가가 마려웠으나 의사 선생님을 뵙고 화장실을 가려 괄약근에 힘을 주고 있다. '지금 화장실에 가서 싸? 아니야 그럴 때 의사 선생님이 오시면 좀 그렇잖아. 얼굴 보고 싸야겠다.' 그런데 아직도 의사 선생님이 안 오신다. 오늘은 아침 회진을 하지 않는 날인가? 나의 안정적인 일 보기를 위해서 간호사실에 전화를 한다.

  "아직 의사 선생님이 안 오셔서요. 오늘 아침 회진 안 하시나요?"

  "아! 지금 회진하고 계셔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오실 거예요."


  09시 10분.

  아직도 의사 선생님은 오지 않고, 나의 괄약근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아들에게 묻는다.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에게 묻는다.

  "설마, 의사 선생님이 지금 오시진 않겠지? 아빠 얼른 싸고 나올게."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가 꼭꼭 잠겨두었던 괄약근을 풀어준다. 풍덩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다. 그와 동시에 똑똑똑! 의사 선생님이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노크를 하고 들어오는 줄.

  "아빠, 안 계시니?"

  "화장실에요."

  앗! 이렇게도 절묘한 타이밍으로 들어오시다니! 빨리 대충 수습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아들이 킥킥킥 거리면서 얼굴이 벌겋게 웃고 있다.


출처: 포토뉴스, readers news.com

  의사 선생님은 아들의 상태를 잠시 확인하시고, '오늘 퇴원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머문 시간은 3분 내외. 그 시간을 위해서 이토록 오래 참았건만.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똑똑똑' 소리가 들릴 줄이야!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나는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똥줄이 타서 급히 화장실로 뛰어가고, 의사 선생님은 그 모습을 지켜본 듯이 딱 내가 들어가는 순간, 우리 방에 들어오셨다.


  조금만 더 참을걸. 그럼 의사 선생님을 뵙고 화장실에 갈 수 있었을까? 의사 선생님은 마치 자신의 핸드폰으로 우리 방을 엿보고 있다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문을 두드리는 타이밍이었다. 참 살면서 어찌 이리도 절묘한 타이밍을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아침밥 먹고 신호가 왔을 때 고민하지 말고 그냥 바로 갔으면 어땠을까?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일을 할 때,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생긴다. 그때는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면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이 맞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고민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오늘 나 같은 경우, 일을 그르치지는 않았지만, 일을 편하게 보지는 못하였다. 결심이 을 때 과감하게 실행해야 함을 오늘 다시 한번 느낀다. 


  '설마, 지금 오시진 않겠지?'라는 불안한 멘트보다는, '지금은 안 오실 거야!'하고 확신에 찬 멘트를 날리며 과감히 일을 시행했어야 한다. 그렇게 했으면 나는 1시간가량 갈등과 번뇌에 휩싸이지 않았을 것이고, 내 괄약근도 편안했을 것이다.


출처: 웹, wordrow.kr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세상이지만, 불확실한 멘트보다는, 확신에 찬 멘트를 내 입으로 내뱉으며 과감히 결단하여 살아가야 함을 오늘 크게 느낀다. 안 그러면 시트콤의 한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다. 아들과 나는 이 에피소드를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풀어놓았다. 아들이 퇴원한 저녁, 네 식구 모두 모여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크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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