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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Nov 07. 2024

말 안 듣는 자녀, 너무 잘 들어도 좀..

아이들이 부모 말에 즉각 반응하고 순응하면 부모는 행복해할까?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도를 닦는다. 아이는 독립적인 인격체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 그 의지가 부모의 뜻과 같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너무나 마음에 드는 장난감이 눈에 들어온 아이는 부모에게 사달라고 떼를 쓴다. 그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장난감뿐이다. 이산가족을 만난 심정으로 그 녀석을 집에 데려가겠다는 의자가 확고하다. 부모는 끝까지 안 사주거나 어쩔 수 없이 사준다. 너와 내가 같은 뜻을 품거나 각자의 길을 가거나.


  어린 자녀와 살면서 잔소리하는 부분은 참 많다. 거의 일상생활 자체가 잔소리이다. 부모는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계속적인 잔소리를 자녀에게 말한다.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씻고 밥 먹자."

  "밥 먹어야지. 물고 있지 말고 씹어."

  "이 닦아야지. 대충 닦지 말고 꼼꼼하게."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손 씻어야지."

  "장난감 다 놀았으면 정리해야지."

  "이제 텔레비전 그만 보고 꺼야지."

  "이제 그만 놀고 잘 준비해야지."

  부모가 그렇게 말하면 즉각 반응하고 행동하는 자녀는 거의 없다. 부모는 속이 터진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이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가 말하는 것을 로봇처럼 명령을 접수하여 즉각 반응하여 행동한다면 그것도 참 이상할 것 같다.


출처: 블로그, 파스텔하우스 출판사

  우리 집에 첫째는 5학년 남자아이이다. 내가 말을 하면 듣고, 나의 의도대로 잘 행동한다. 그러면 내 마음이 힘들지 않다. 둘째는 6살 여자 아이이다. 아빠가 말하는 것을 거의 듣지 않는다. 아빠가 말하면 한 번 만에 그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 마음의 여유가 있고 피곤하지 않을 때는 둘째의 말 안 듣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고, 내가 피곤에 절어 있을 때는 말 안 듣는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난다. 나의 표정이 굳어지고 어투가 거칠어진다. 그런 나를 보며 둘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한다.

  "아빠, 다정하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째가 지금처럼 내 말을 무시하지 않고, 내가 말한 것을 즉각 이행하면 내 마음이 즐거울까? 두 번, 세 번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덜 힘들기는 하겠지만 내 마음이 더 행복할까? 그 모습을 상상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둘째에게 한 말을 로봇처럼 명령을 받아들이고 아무 꾸물거림 없이 바로바로 행동하면 너무나 이상할 것 같다. 왠지 스트레스는 없고 내 마음은 편하겠지만, 뭔가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둘째를 깨운다. 절대 한 번 만에 일어나는 법이 없다. 

  "이제 일어나서 쉬하고 세수하고 밥 먹자."

  "5분만 더."

  "아니. 일어날 시간이야."

  "안아."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데려간다. 바쁜 아침에 이런 상황이 살짝 짜증 나기도 하지만 둘째가 참 귀엽다. 언제까지 안고 화장실로 데려가주길 바랄까?


  내가 일어나라고 말하자마자 둘째가

  "응. 알겠어. 지금 일어날게."

  말하면서 바로 화장실로 직행한다면, 안아서 이동하지 않아도 되니 참 수월할 것 같다. 그런데 왠지 허전할 것 같다. 아빠에게 안겨서 이동하는 둘째. 엉덩이를 팡팡 몇 번 두드리다가 안아서 데려간다. 그 짧은 순간의 장면들이 바쁜 아침의 싫으면서도 좋은 삶의 즐거움이 아닐까. 가끔 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면 어른은 그동안 집안일을 하거나 개인적인 일을 할 수 있다. 만화 시청 시간은 아이도 좋고 나도 좋은 시간이다. 아이에게 무작정 많이 보여주지는 않고 적당한 시간 동안만 시청하게 한다. 그러면 아이는 조금이라도 더 보려 애를 쓴다.

  "지금 7시부터 보니까 7시 30분까지만 보는 거야."

  "응. 30분까지 볼게."

  그 30분은 야속하게도 너무 빨리 흘러간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계속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갈등한다.

  '조금 더 보게 그냥 둬? 이제 그만 봐라고 말해?'

  그래도 약속이 있으니 한 마디 한다.

  "30분 지났네. 텔레비전 보는 시간 끝!"

  "보던 이 편만 끝날 때까지."

  "그래. 이거 다 보면 끄는 거다!"

  아량을 베푸는 듯 말하며 사실 나도 더 쉬어서 좋다.


  약속한 그 편이 끝나고 다음 편이 또 연결되어 나온다. 과연 둘째는 텔레비전을 끌까? 끌 때도 있고, 안 끄고 계속 볼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이제 텔레비전 꺼야지!"

  "아빠. 딱 한 편만 더 볼게. 진짜 진짜 마지막."

  "안돼. 아까 약속했잖아."

  "그래도 너무 보고 싶단 말이야."

  "진짜 진짜 이게 마지막이야. 끝나면 양심적으로 텔레비전 끄기!"

  "아빠, 최고!"


  정해진 시간을 지켜서 텔레비전을 꺼줘도 좋고, 좀 더 보고 싶어서 애원해도 좋다. 첫째는 정해진 시간을 칼 같이 지켜서 티브이를 본다. 둘째는 눈치껏 더 보기 위해 애를 쓴다. 텔레비전을 좀 더 보여주면 나는 좋은 아빠가 되고, 핸드폰이라도 한 번 들여다본다. 아이의 뇌 건강에는 안 좋겠지만, 엄청 오래 보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겠지. 텔레비전을 시간 계산하면서 보는 둘째는 어느 정도 산수가 가능해졌다.

  "오빠, 볼 수 있는 시간 이제 5분 남았네. 이제 나 볼 시간~"

  6살짜리가 필요에 의해서 연산을 익히다니!


  놀다 보면 씻고 잘 시간이 다가온다. 씻을 시간을 정하고 논다.

  "8시 10분 되면 이 닦고 머리 감자."

  놀면서도 시계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약속된 시각이 되어도 더 놀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칭얼거리고 울기도 하고 냅다 드러눕는다. 안아서 가려면 나를 밀어서 눕히며 또 장난을 친다.

  "머리 감기 싫어. 꼭 감아야 해?"

  "응. 머리에 냄새나면 선생님, 친구들이 안 좋아할 거야."

  순순히 씻지 않고 매일 이렇게 실랑이를 살짝 가진 후 씻는다. 그것을 즐기는 듯.


  만약 둘째가 씻자고 했을 때 즉각 반응하여, 얼른 씻으러 가고 아무 불평 없이 머리를 감으면 내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 본다. 잔소리를 안 해도 되니, 나의 입과 몸은 안 힘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자는 대로 둘째가 빠릿빠릿하게 행동하여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매일 둘째가 나의 말을 잘 듣고 움직인다면? 나는 처음에는 그것에 고마워하다가, 나중에 익숙해지면 좀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약간의 밀땅을 할 때 좀 더 스릴감 있는 그런 느낌.


출처: 네이버 포스트, m.post.naver.com

  자녀를 키우는 것을 연애할 때와 비교해 생각해 본다. 너무나도 나에게 잘 맞춰주는 이성이 처음에는 좋다. 그런데 그것에 익숙해지면 점점 그 이성에게서 나의 마음이 떠남을 느낀다. 하지만 럭비공 튀듯이 잘 맞추어주기도 하고, 자기 뜻대로 하기도 하는 이성은 참 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성을 들인다.


  나의 자녀 마음도 갈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니, 어린아이의 마음은 강아지풀과 같다. 살랑이는 바람에도 너무나도 쉽게 흔들린다. 아이들이 부모의 뜻에 따르지 않고, 종잡을 수 없이 행동하는 까닭은 '나를 더욱 챙겨주고 사랑해 주세요!'의 표현이 아닐까! 내 말을 안 듣는 자녀가 내 말을 잘 들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잘 들으면 그것도 별로일 것 같다. 아이의 밀땅이 부모를 더욱 부모답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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